야단법석

[스크랩] 고흐의 수채화

우또라 2007. 9. 3. 18:27

고흐의 수채화

자료: http://www.ofof.net/gogh/

 

 

고흐와 고독

온통 섬세한 황금빛으로 넘실대는 태양과 더불어

찬란한 빛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죽음 속에서는

그 무엇도 슬프지 않다.

...

내일, 그속에서 내 삶은 위태로워지고

내 이성은 반쯤 몽롱해진다.

...바로 이렇게 죽고 싶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려 애쓰는 대신

나는 색채를 임의적으로 사용한다.

보다 강렬하게 나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거기에 담아내기 위해.

대상성보다는 인간의 눈을 그리고 싶다.

인간이란 대개의 경우...

너무나도, 너무나도,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지..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

자신을 격리하고 있는 것.

자신을 매장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난간이나 창살이나 벽이 있음을 느끼고 있지 않는가!

나는 수도자 기질과 화가 기질이라는약간 이중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미쳐서 수도원에 칩거한 화가 위고 반 데르 에스처럼 오래 전에

미치고 말았으리라.

만약 또다시 발작이 일어나 내가 독방에 갇힌다해도

...잠정적이긴 하지만 내가 아직 미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셔야 합니다.

머리가 돈다는 것...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병입니까?

이건 틀림없이 날세...

하지만 미쳐버린 나군...

(친구 고갱의 그림을 보고)

빈센트는 그 노란 색을 얻기 위해 그해 여름 내내 취해 있었다.(데니스 호퍼)

인간은 즐거움과 행복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

내가 늙고 추하고 심술궂고 아프고 가난해질수록

나는 찬란하고 눈부신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그것에 복수하고 싶어진다.

*나는 어느 지인의 뇌사를 본다.

사람의 얼굴은 몇 개나 될까?

딸, 여자, 어머니, 친구, 동지, 아내, 누이...

살과 뼈는 내가 살아가는데 대체 어떤 구실을 하는가?

나는 회복이라는 의미를 어디까지나 머리에 둔다.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조건이다.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자료다.

하지만

보통 얘기하는 정상에 압수당하고 싶지 않다.

같이 압상트를 마시고

사람을 잡아 먹는 그림에 미쳐 버린 고흐를

종종 꿈길에서 마주한다.

 

 


The Grove

Lane in the Public Garden at Arles

Path in the Woods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프로스트



Avenue in Voyer d'Argenson Park at Asnieres

Avenue of Poplars in Autumn

Autumn Landscape

Autumn Landscape with Four Trees

Autumn Landscape at Dusk


 

Print on artists canvas / Vincent Van Gogh




A Pair Of Shoes


Sunflowers 1888


Garden Of The Asylum With A Sawn Off Pine Tree


Blossoming Almond Branch In A Glass.


Red Poppies 1886


Mulberry Tree


Pavement Cafe


Starry Night


Vincents Bedroom In Arles 


Pollard Willows Setting Sun


Sower With Setting Sun

반 고흐는 살아선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고,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지금 고흐의 작품들은 세계 최고의 가격으로


 

소더비 경매에 가끔 나오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고가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일본 어느 보험 회사의 꼭대기층 갤러리에


 

삼엄한 경비속에 걸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흐의 그림들은 세계 각국의 유명한 미술관에서


 

가끔 볼 수 있긴하지만,


 

암스텔담의 고흐 박물관에 가면


 

그의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고흐가 귀를 자른 진짜 이유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국은정(vin78) 기자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004 예담
대학에 다니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일과는 도서관에서 책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항상 낡은 나무 냄새와 먼지 냄새, 그리고 오래된 책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헤이즐넛 향기가 났다. 이유없이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주기에는 그 편안하고 오래된 냄새들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 구석진 자리에서 낡은 양장본 화집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엔 후기 인상파들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편의 그림이 있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이다.

칙칙하고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금방 꺼질 것처럼 희미한 램프 불 아래 모여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미 세상에 없는, 저 먼 이방의 화가에게 홀려버린 그 순간,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고흐와 만났다. 서로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온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탄광촌의 광부들. 얼굴과 손에는 고랑처럼 깊이 패인 주름이 가득하고 온몸에는 무거운 피곤이 찌들어 있는 그들 곁에 금방이라도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그림에 빠져있던 어느 날엔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어이~ 자네, 오늘도 날 만나러 왔나? 그래봐야 한낱 슬픔 중독자에 불과한 나라네!" 하며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그림에선 노랗게 불타오르던 그의 영혼이 느껴졌다.

고흐에 관한 책은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해설이나 상상력에 기댄 작품이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가 직접 쓴 편지들을 담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은 내가 읽은 그 어느 책보다 가장 고흐답다. 편지의 주된 대상은 누가 뭐라 해도 그의 예술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독려해준 동생 테오.

▲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가 농부들의 삶을 그리기 위해 탄광촌에 들어가 살 때 광부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 받고 그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을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본문 중에서)

나는 가끔 그의 동생이 되어 그의 편지를 읽고, 그에게 마음으로 답장을 띄우기도 했다.

"봄을 그린 그림을 찾아보려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어요. 땡볕의 여름, 조락의 가을, 삭막한 겨울이 당신 그림의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왜 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거적 하나만 걸치고 나가 알몸으로 밤을 지새웠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봄이 와도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던 당신의 상처들, 그 말없이 황량한 풍경!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지금 당신의 하늘은 어떠한가요? 여전히 빨아들일 듯한 표정으로 붓을 긋고 있나요? 당신 속에 있는 열정은 이 땅의 어느 꽃, 어느 노을보다 더 치열했는데! 오늘따라 당신이, 당신의 미치도록 뜨거운 열정이 그립습니다."


그렇게 받을 사람 없는 편지를 쓰는 건, 내 곤고한 영혼에 대한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그의 열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 고갱과 심하게 다툰 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 이때부터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고흐의 광기가 극에 달한 시점에도 자신을 그렸다는 것이 놀랍다.
ⓒ2004
사람들과 고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고흐는 왜 귀를 잘랐나?" 하는 질문을 꼭 하게 된다. 물론 그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고흐가 정작 귀를 자른 이유는 어쩌면 고흐 자신조차 모르지 않을까?

흔히 잘 알려진 이유는 친구였던 '고갱'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것. 고흐와 고갱은 그림에 대한 시각이 서로 달랐다. 이건 분명히 '다르다'의 의미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마음이 여리고 신경이 쇠약했던 고흐는 고갱의 충고를 자신의 그림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급기야 그 분노를 참지 못해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연 고흐가 친구의 조언 때문에 귀를 자를 만큼 심한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판 값으로는 물감 하나 사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오로지 동생 테오의 물질적 후원과 도움으로 생계와 작품활동을 이어나갈 형편이었다.

그런 동생에게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얘길 전해 듣는다. 자신에게 쏟아왔던 테오의 희생이 이제는 모두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흐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 조바심이 고흐의 삶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고갱의 그림에 대한 충고는 그저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을 뿐, 사실 더 중심에는 자신의 막막한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불안과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응축되어 있었다. 실제로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이 일어난 후에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본문 중에서)

무엇이 고흐를 그토록 흥분하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정확한 건, 그가 이성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몇 차례의 발작이 있고 난 후 고흐는 동생 테오와 돈 문제로 심하게 다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을 사랑했고 지독하게 가난했던 그,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초라한 다락방 침대 위에서 스스로 가슴에 총탄을 쏜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동생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 고흐의 아틀리에 ('고흐의 방'으로 불림) 고흐가 귀를 자른 뒤 고갱이 떠나버리자 고흐는 '침해 받지 않는 휴식'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삶으로는 다 풀지 못한 그의 열정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의 그림은 여전히 '현존'하며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고갱에겐 없던 그 무엇이 고흐에겐 있었다. 그의 붓 앞에서는 캔버스도 숨을 죽였다.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화가를 두려워한다." (본문 중에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씀, 신성림 옮김/ 예담 / 1999년 6월/ 256쪽/ 9800원

 





1874, 1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을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1879, 8/15



이번에 네가 다녀간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급히 편지를 쓴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도, 예전처럼 편지를 띄우지도 못했지.

죽은 듯 무심하게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게 얼마냐 좋으냐.

정말 죽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1881, 11/10



이 사랑이 시작될 때부터,

내 존재를 주저 없이 내던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승산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나를 던진다 해도 승산은 아주 희박하지.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1882, 5/3~12



겨울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포즈를 취하는게 힘들었지만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나는 좋은 모델을 가진 덕분에 데생에 진전이 있었다.






1882, 7/21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으로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1883, 3/21~28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 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885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888, 5 ~ 6



우리 같은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아프게 되면 방금 죽은 불쌍한 관리인보다

더 고독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있고,

집안 일을 돌보면서 바보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만 하고 홀로 지내면서

가끔은 바보처럼 살고 싶어한다.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는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1888, 7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주어라.


요즘은 너에게 그림을 보내기 위해서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중이다.

<수확>을 그리는 동안 밭에서 직접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보다

결코 편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1888.9.17 



오늘 아침 이른 시간에 너에게 편지를 쓴 후

태양이 비치는 정원 그림을 그리러 나가서 작업을 마쳤다.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새 캔버스를 가지고 나갔고,

그것도 끝내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싶어 펜을 들었다.







1889, 1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건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후기 인상파 화가이자

정신 분열증세로 자신의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예술의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친동생 테오와

19여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 받는다.


그가 테오에게 쓴 편지를 읽어 보면

너무나도 순수한 예술가의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예술가로서의 갈등이 하나도 남김없이 그려진

고흐의 편지는 모두 668통이나 된다.

계산해 보면 한달에 평균 두통씩 테오에게 보낸 셈이다.



신학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한 고흐는

27살이 되서야 비로소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테오에게 뎃생 책과 그림물감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후 고흐는 죽을 때까지

테오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순수한 영혼의 시각을 통해

사람과 대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러나 그림이 팔리지 않아

늘 가난한 화가의 신세를 벗어날 순 없었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평생 그를 괴롭히는 고통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는 진보적인 예술가들의 공통된 여정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고흐의 삶은 가장 비극적인 예술가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지만

해맑은 영혼으로 그려진 그의 그림 속에는

"불꽃같은 정열과 눈부신 색채"가 담겨 있어

사람들을 더욱 감동시킨다.


또한 고흐가 쓴 편지 역시 감동적인 까닭은

화가이면서도 음악과 사람을 사랑했으며,

또한 자신의 예술세계를 사랑했던 고흐의 인간적인 모습이

그의 글에서 발견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1874, 1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을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1879, 8/15


이번에 네가 다녀간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급히 편지를 쓴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도, 예전처럼 편지를 띄우지도 못했지.

죽은 듯 무심하게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게 얼마냐 좋으냐.

정말 죽게 될 때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1881, 11/10


이 사랑이 시작될 때부터,

내 존재를 주저 없이 내던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승산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나를 던진다 해도 승산은 아주 희박하지.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1882, 5/3~12


겨울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포즈를 취하는게 힘들었지만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나는 좋은 모델을 가진 덕분에 데생에 진전이 있었다.



1882, 7/21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으로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1883, 3/21~28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 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885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888, 5 ~ 6



우리 같은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아프게 되면 방금 죽은 불쌍한 관리인보다

더 고독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있고,

집안 일을 돌보면서 바보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만 하고 홀로 지내면서

가끔은 바보처럼 살고 싶어한다.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는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1888, 7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주어라.


요즘은 너에게 그림을 보내기 위해서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중이다.

<수확>을 그리는 동안 밭에서 직접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보다

결코 편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1888.9.17


오늘 아침 이른 시간에 너에게 편지를 쓴 후

태양이 비치는 정원 그림을 그리러 나가서 작업을 마쳤다.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새 캔버스를 가지고 나갔고,

그것도 끝내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싶어 펜을 들었다.



1889, 1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의 연작으로 보여야 할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너 하나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전체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래서 그 그림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발작의 고통이 나를 덮칠 때 겁이 난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작은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 정신병원 철창을 통해

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을 내다보면서

느꼈던 고독과 고통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

그건 불길한 예감이다.


성공하려면, 그리고 계속되는 행운을 즐기려면,

나와는 다른 기질을 타고 나야 할 것 같다.






후기 인상파 화가이자

정신 분열증세로 자신의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예술의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친동생 테오와

19여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 받는다.


그가 테오에게 쓴 편지를 읽어 보면

너무나도 순수한 예술가의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예술가로서의 갈등이 하나도 남김없이 그려진

고흐의 편지는 모두 668통이나 된다.

계산해 보면 한달에 평균 두통씩 테오에게 보낸 셈이다.



신학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한 고흐는

27살이 되서야 비로소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테오에게 뎃생 책과 그림물감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후 고흐는 죽을 때까지

테오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순수한 영혼의 시각을 통해

사람과 대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러나 그림이 팔리지 않아

늘 가난한 화가의 신세를 벗어날 순 없었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평생 그를 괴롭히는 고통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는 진보적인 예술가들의 공통된 여정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고흐의 삶은 가장 비극적인 예술가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지만

해맑은 영혼으로 그려진 그의 그림 속에는

"불꽃같은 정열과 눈부신 색채"가 담겨 있어

사람들을 더욱 감동시킨다.


또한 고흐가 쓴 편지 역시 감동적인 까닭은

화가이면서도 음악과 사람을 사랑했으며,

또한 자신의 예술세계를 사랑했던 고흐의 인간적인 모습이

그의 글에서 발견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출처 : 아침이슬 저녁노을
글쓴이 : 윤건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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