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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 장편소설 <흑풍>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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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승려시인이자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만해(卍海) 한용운의 장편소설 <흑풍>(사랑과나무, 전2권)이 나왔다. <흑풍>은 1935년 <조선일보>를 통해 발표한 만해 선생의 장편소설.
이 소설은 극심한 혼란기를 겪고 있는 청말(淸末)의 중국을 소설의 무대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그 무대 속에 나오는 실제 현실은 1930년대 이후 우리가 처한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청말 혼란을 겪고 있는 중국인들의 기구한 삶과 고난의 현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얼과 독립사상을 역설적으로 고취시켜내는 소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만 알고 있는 만해 선생의 장편소설이 있다는 것, 아니 만해 선생이 장편소설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조차도 몹시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만해 선생은 장편소설 <흑풍>을 1935년 4월 8일자부터 <조선일보>에 정식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이때, 만해 선생은 "평소부터 여러 분께 한 번 알리었으면 하던 그것을 알리게 된 것"이라며 "글 속에 숨은 나의 마음까지를 읽어주신다면 그 이상의 다행이 없겠다"라고 연재를 시작하는 당시 자신의 심정을 밝혀놓고 있다. "글 속에 숨은 나의 마음까지를 읽어" 달라는 만해 선생의 이 한마디, 화두 같은 이 한마디는 바로 이 소설에서 우리 민족의 항일정신과 자주독립을 읽어달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펴낸 만해 선생의 장편소설 <흑풍>은 1973년 '신구문화사'가 간행한 <만해 한용운 전집>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나온 적이 없었던 책이다. 또한 기존의 한문 투의 문장을 출판사측에서 최근 쓰이는 우리말로 새롭게 다듬어 펴냈다고 한다.
모두 6부로 나뉘어진 만해 선생의 <흑풍>은 '지주와 소작인'으로 시작하여 '구직''강도''유학''초연''정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청말을 살아가는 중국인 '왕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왕한이 살고 있는 현실은 비럭질보다 더 못한 세상이다. '영애'를 놓고 벌어지는 소작농 '서순보'와 지주 '왕언석' 사이의 갈등,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직업을 구하러 상해 거리에 나서는 주인공 왕한, 그러나 왕한은 직업을 구하기는커녕 젊은 대학생과 경찰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 비렁뱅이 소녀에게까지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주인공 왕한은 그렇게 주저앉을 수가 없다. 극도로 모순된 사회 현실과 이리저리 뒤틀어진 여러 인물들에 의해 점차 분노만 쌓여가는 왕한, 마침내 왕한은 강도 행각에 나선다. 그리고 상해의 부호 '장지성'을 제거한 뒤 빈민굴을 찾아가 은신하기도 하고, 명탐정 '양훈'을 교묘하게 따돌린 뒤, 오히려 상해경찰청장 '소욱'을 이용해 유학길에까지 오르기도 한다.
유학길에 오른 왕한은 중.미 여객선에 출몰한 해적과의 일전을 벌이기도 한다... 미국 유학 중에 왕한은 '콜난'이라는 미모의 여자를 만난다. 하지만 그 여자 콜난은 왕한이 제거한 바로 그 '장지성의 무남독녀'다. 여기에다 왕한을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유학생 '순옥'이 등장한다. 그러나 순옥 또한 상해경찰청정 '소욱'의 정탐꾼 역할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소욱의 질녀 '정숙'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흑풍>은 때로는 무협소설이 갖고 있는 긴장감과 흥미감이 드러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추리소설적 요소가 군데군데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일단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재미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왕한이 혁명당의 일원으로 귀국하여 중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소상강 인근에 터전을 잡을 때까지, 틈틈이 드러나는 사랑과 연애 등은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만해 선생의 장편소설 <흑풍>은 만해 선생이 스스로 민족대표 한 사람으로 참가한 3.1독립운동의 실패에서 오는 허탈감을 그 스스로 장편소설 속에서라도 반드시 성취시켜내려 했다는 불굴의 의지가 용솟음치는 장편소설이다.
또 한동안 시로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있었던 만해 선생이 <흑풍> 외에도 <박명>이라는 장편소설까지, 두 권이나 썼다는 것은 분명 만해 선생 스스로 시가 갖고 있는 어떤 한계를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각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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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생은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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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생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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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군 성곡리 492번지에서 이양공 한명진의 19세손인 청주인 한응준과 온양인 방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민적에 기록된 이름은 "정옥"이며 불문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유천"이라 불렀다. 이름은 태원, 호는 만해, 법호는 용운이었다.
선생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에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간다. 1905년에는 인제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었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는다.
1908년,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한 후 일본에 가서 새로운 문명을 보고 온다. 하지만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국을 잃게 되자 중국으로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한 뒤,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에 귀국하여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는다.
같은 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을 저술하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한다. 1916년에는 서울 계동에서 월간지 <유심(唯心)>을 발간하고, 1919년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내 이 땅의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을 맡는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하면서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같은 해 월간지 <불교>를 인수한 이후부터 많은 논문을 발표하면서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
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에는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지목되어 검거되었다. 선생은 이후에도 불교의 혁신을 위한 여러 가지 논문과 더불어 문학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해방을 한 해 앞둔 1944년 6월 29일에 서울 성북동에서 중풍으로 65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시에 있어서도 퇴폐적인 서정성을 철저히 배격했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를 노래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작품으로는 장편 <흑풍>, <박명>이 있고, 시집으로는 <님의 침묵>이 있다. 그 외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1973년 <한용운전집>(6권)이 나왔다. / 이종찬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