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들의 시에 담긴 아름답기도, 추악하기도한 한국사회
Date : 10-07-12 18:04
이주민들의 시에 담긴 아름답기도, 추악하기도한 한국사회
'제2회 다문화 외국인 시낭송회' 열려
이주민과 국내 시인이 한자리에 모여 시를 낭송하고 문화를 즐기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1일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제2회 다문화 외국인 시낭송회'가 열렸다. 창작21작가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글쓰기를 통해 결혼이주여성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문학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 국내 시인과의 문화적 소통을 위해 열렸다.
한편의 시에 담긴 이주민들의 슬픔과 기쁨 이날 시낭송회에서는 등 터 융(베트남), 잉나이툰(버마), 최미성(중국동포), 고오노 에이지(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자작시를 낭송해 눈길을 끌었다. 이주민들의 시에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정과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시도 있었지만, 한국인들의 편견과 한국사회의 부당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도 담겨 있었다.
지난 11일 열린 다문화외국인 시낭송회에서 중국동포 최미성 씨가 자작시 '정(情)'을 낭송하고 있다. ⓒMWTV
'피부가 까맣거나 하얗거나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그 누구 그 어디서라도 나에겐 다르지 않네/ 사람 피는 다 같이 빨갛고 우리는 모두 한 사람에게서 왔다/ 나는 이미 알고 있네/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느 우리 모두는 그 하늘 구름처럼/ 같은 바람에 춤을 추며 살아가네/ 하나의 태양에서 나오는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슬픈 현실'-'인생의 노래' 中
단비르 하산 하킴(방글라데시) 씨는 자작시 '인생의 노래'를 낭독하며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한국에 오셨다/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호박처럼 퉁퉁 부은 얼굴/ 절뚝이는 걸음걸이 그리고 가끔 몹시 심한 기침/새우처럼 굽어진 허리/ 누워서 잠을 주무시지 못하는 나의 아버지/병원에 모시고 갔다/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디스크 중증입니다/ 폐동맥 고혈압입니다/아버지께서 한국에 오셔서 기쁘지만 마음 또한 아픕니다'-'나의 아버지' 전문
등 터 융(베트남) 씨는 '나의 아버지'라는 자작시를 통해 한국에 오신 아버지에 대한 애환을 절절하게 드러냈다. 특히 등 터 융 씨는 이날 시낭송을 위해 베트남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참석해 환호를 받았다.
이날 시낭송회에서 등터융 씨가 베트남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 입고 자작시를 낭송해 박수를 받았다. ⓒMWTV
'아침마다 내 손으로 따뜻한 밥을 지어 드렸던 그 시간/ 매일 아침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을 볼 때마다/ 부모님 얼굴이 밥에 그려지기에 한 술 뜨기가 힘들다/ 왜 그때 밥을 많이 떠 드리지 못했을까? 지금은 후회만.../ <중략> 어렸을 때 놀던 고향의 바닷가/ 부모님과 장난치며 수영을 했던 모습이 떠오르고/ 아빠 엄마의 얼굴이 야속한 파도에 지워진다/ 똑같이 짠 바닷물 내 눈에도 바닷물이 흐르고 파도 친다/ 그리운 부모님은 늘 내 눈 앞에 나타나기만 한다'-'그리운 부모님' 中
숙아띤(인도네시아) 씨는 '그리운 부모님'이라는 자작시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두고온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숙아띤 씨는 "한국생활에서 겪은 일들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쓰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DMZ에 왔다. 아름답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무기와 총들이 있었다. 언어와 문화가 같은 민족인데 왜 이렇게 애타게 살고 있을까/ 버마는 아름다운 황금나라다. 그렇지만 군사독재 때문에 곳곳에 무기와 총들이 있다/ 많은 민족들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왜 독재자는 혼자만 생각할까/ 하지만 남북 통일과 버마 민주화는 멀지 않다/ 평화 통일과 버마 민주화는 아시아의 평화를 찾는 길이다' -'DMZ' 전문
조모아(버마) 씨는 'DMZ'라는 자작시를 통해 남북통일과 버마 민주화를 염원했다. 조모아 씨는 "얼마전 DMZ에 다녀와서 보고 느낀 것을 시로 표현했다"며 "버마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진정한 평화가 깃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릇된 사랑 아래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장례식에 참석해 애도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오, 산산조각난 내 빈한한 삶이여/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꿈/ <중략> 자포자기하고/ 비참하게 고개숙인 청년은/ 치욕스러운 얼굴을 하며/ 자존심을 꺾은 채 두려움에 떱니다' -'표류하는 꿈' 中
따야민카익(버마) 씨는 자작시 '표류하는 꿈'을 통해 이주노동자로서의 힘겨운 삶과 꿈을 잃고 표류할 수 밖에 없는 어두운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시낭송회에 참석한 이주민들은 한국인에 대한 정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했지만 한국인들의 편견과
부당한 현실로 인해 고통받는 심정을 시로 표현해 한국사회의 얼굴을 생생히 드러냈다. ⓒMWTV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 시인의 마음
이주민들의 시낭송에 국내 시인들도 사랑과 평화의 노래로 화답했다. 문창길, 김영찬, 하종오, 권혁수 등의 시인들은 이주민과 그들의 나라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노래했다. 한국사회에 각성을 촉구하는 시도 눈길을 끌었다.
'따뜻한 나라의 겨울꽃은/ 참으로 처절하고 슬프지만/ 숙명처럼 아름다운 희망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봄이 없는 나라에/ 분명히 봄이 찾아 올 것ㅇ란/ 희망이 삭트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나는 그것을 사랑합니다/ 아니 이미 사랑해버린 나의 아내처럼/ 미소가 아름다운 카렌의 따미처럼/ 기어이 아름답게 피어날 그 꽃들을/ 평화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평화의 이름으로 피어나기를' 中
문창길 시인은 '평화의 이름으로 피어나기를' 을 노래하며 버마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전했다. 문 시인은 "버마 카렌족 축제에 다녀온 후 그들의 따뜻하고 평화를 향한 마음에 감명을 받아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미얀마에 가면 미안할 것 같다/ 이렇게 늦게 찾아온 것이 안남미 흰 쌀밥처럼 김 서리게 미안하고/ <중략> 미얀마에 가면 무작정 미안해질 것 같아 가지 않는게 낫다고?/ 그렇지 않다/ 미얀마에 간 사람들은 저마다 절 한채씩 품고 오게 될 테니'-'미안한 마음, 미얀마' 中
김영찬 시인은 '미안한 마음, 미얀마'를 통해 미얀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했다.
'한국에서 몸 푼 베트남인 산모와/ 한구게서 몸 푼 필리핀 산모와/ 한국에서 몸 푼 태국인 산모와/ 한국에서 몸 푼 캄보디아인 산모는/ 시어너미가 끓인 미역국을 먹고요/ 아, 시방/ 아기들은 똑같은 울음소리로 울고요'-'지구의 해산바라지' 中
하종오 시인은 '지구의 해산바라지'를 낭독하며 각 나라의 해산문화는 제각각이지만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각나라의 다양한 문화공연으로 즐거움 더해
이날 행사에서는 각 나라의 다양한 문화공연이 마련돼 즐거움을 더했다. 버마 민중가수 조로루 씨의 노래와 버마 전통춤, 이귀연 명창의 판소리와 민요공연이 열렸다.
이날 참석한 최미성(중국동포) 씨는 "평소 글쓰는 것을 좋아해 이번 시낭송회에 참가하게 됐다"며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창길 시인(창작21 대표)는 "이주민들의 문학적 감수성이 담긴 시를 읽으며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올바로 갖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MWTV 배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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