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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리 | 제3회 삼정문학관 문학강연 및 시 낭송회··· 2주기 추모 행사
함경북도
우리 고향 아득한 마을
행준네 넓은 콩밭머리에
이 아침 장끼가 내렸는가 보아라
칙칙거리기만 하고
아직 못 가는 이 기차
해는 노루골 너머에서
몇 자쯤 떴는가 보아다오.
-김규동, ‘아침의 편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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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리 | “김규동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모더니즘 시론으로 전후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담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올곧은 자세로 분단 극복을 지향해온 선생님의 정신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에 문학 강연 및 시 낭송 자리를 마련하오니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두만강엔 /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 강 건너 개 짖는 소리 아직 남아 있을까 // 통일이 오면 / 할 일도 많지만 /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 놓아 울고 나서 / 흰머리 날리며 / 씽씽 썰매를 타련다”(두만강)던 한국문학 버팀목이었던 시인 김규동(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2011년 9월 28일) 선생.
시인 김규동 선생이 남긴 문학을 새기고, 그 올곧았던 삶을 기리는 ‘김규동 시인 다시 읽기’ 문학제가 11월 9일(토) 낮 2시∼4시까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정문학관 강의실에서 열렸다. 삼정문학관이 이끈 이번 시인 김규동 2주기 추모제는 단풍불이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모두 5부로 나뉘어져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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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리 | “죽기 전에 못 가면 죽어서 날아가마”
나무
너 느릅나무
50년 전 나와 작별한 나무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늘어진 머리채를 흔들고 있느냐
8·15 때 소련병정 녀석이 따발총을 안은 채
네 그늘 밑에 누워
낮잠 달게 자던 나무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
그래 맞아
너의 기억력은 어린 시절 동무들은 어찌 되었나
산 목숨보다 죽은 목숨 더 많을
세찬 세월 이야기
하나도 말고 들려다오
죽기 전에 못 가면
죽어서 날아가마
나무야
옛날처럼
조용조용 지나간 날들의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를
들려다오
나무, 나의 느릅나무.
-김규동, ‘느릅나무에게’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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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리 | 시인 맹문재(문학평론가) 사회로 열린 제1부는 내빈소개(강춘영 여사 외)와 모시는 말씀(정정례, 시인, 삼정문학관장)이, 제2부는 시 낭송 및 공연으로 펼쳐졌다. 참가시인은 권성훈, 맹문재, 문창길, 박몽구, 박설희, 박재웅, 박홍점, 박현주, 설광호, 성덕용, 성향숙, 이소리, 이승철, 이승호, 정동용, 정원도, 정정례, 최기순, 최종천. 성악은 김다인, 섹스폰은 전복희.
제3부는 문학강연으로 “내가 만난 김규동 시인”을 시인 민영(한국작가회의 고문 역임)이 차분하게 되짚었다. 제4부는 ‘나의 아버지 김규동 시인’을 차남인 김현(법무법인 세창 대표 변호사,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되돌아봤으며, 제5부는 저녁 식사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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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리 | 삼정문학관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하갈동 91-3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삼정문학관에 시인 김규동 선생이 남긴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전화 031-283-5371 / 010-5314-1236. cjl1236@hanmail.net)
시인 김규동 선생은 호가 문곡(文谷)으로 1925년 2월 13일 함북 경성에서 태어나 경성고보를 거쳐 1946년 연변의대를 마쳤다. 경성고보 때 스승 김기림(金起林)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51년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당선되기도 했다. 1960년에 자유문협상을 받았으며,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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