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 열린 조오현 스님 다비식에서 스님들이 연화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지난 26일 입적한 ‘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의 다비식이 열린 30일 강원도 고성 건봉사. 이날 다비식 현장은 마치 스님이 한 편의 연극을 끝내는 듯했다. 건봉사는 비무장지대 부근 최북방 사찰이어서 경계근무를 서는 군부대를 몇번이나 통과해야 했다.
이날 오전 10시 속초 설악산 신흥사에서 영결식을 마친 스님의 운구 행렬이 건봉사로 오는 동안 하늘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영결식 때만 해도 날은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과 총무원장 설정 스님,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 손학규 바른미래당 고문,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 이수성 전 국무총리,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김진선 전 강원지사, 주호영 의원, 성낙인 서울대 총장 등 3천여 추모객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스님의 사랑을 받은 이근배, 신달자, 홍성란 등 문학인들도 자리를 지켰다. 조정래·김초혜 작가 부부도 말석에 앉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진보적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이 영정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지난 5일간 분향소엔 수만명이 고인을 찾았다. 여야, 승속, 지위 고하가 없었다. 조계종단의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명진 스님도 왔다. 영결식장에도 종단 쪽과 적폐청산시민연대 쪽 인사들이 함께 모였다. 한자리에 앉기 어려운 이들이었지만 설악의 품 안에서 ‘내게 돌을 던진 사람도, 내게 꽃을 던지는 사람도 사랑하라’던 고인의 해맑은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설악산을 떠난 운구 행렬이 금강산까지 오는 한시간 동안 기상이 요동쳤다. 갑자기 예보에 없던 폭우가 쏟아졌다. 그런데 건봉사가 가까워지자 비는 거짓말처럼 개었다. 그러다 운구 행렬이 다비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먹구름이 뒤덮더니 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작에 불이 붙지 않을 수도 있는 비상상황에 1천여명의 행렬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고인의 관을 연화대에 넣는 순간 비는 멈춰버렸다.
30일 금강산 건봉사에서 조오현 스님의 다비식이 열려 연화대가 불타오르고 있다.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오랜 도반인 화암사 주지 정휴 스님, 제자인 신흥사 주지 우송 스님, 낙산사 주지 금곡 스님, 백담사 무문관 유나 영진 스님 등 수십명의 스님들이 불을 붙이며 눈시울을 적셨다. 불타는 영정 속의 고인은 이에 아랑곳없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날씨가 스님처럼 개구지다’는 말에 금곡 스님은 “변화무쌍해도 결국 지금이 거화(불을 붙임)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라며 “스님이 원래 그런 분 아니냐”고 했다. 종잡을 수 없이 보여도, 나중에 보면 사리가 분명했던 스님의 삶을 말한 것이었다.
일부러 꾸미려야 꾸밀 수 없는 천변만화였다. ‘일체가 꿈 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애증에 집착하지 말라’는 <금강경>의 진리를 시현한 허공법계의 법문이 아닐 수 없었다.
고인을 40년간 가까이서 모신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은 “너무도 세심하면서도 너무도 자상하고 너무도 컸던 이런 분을 이생에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며 허공으로 가뭇없이 사라지는 한줄기 연기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날더러 허수아비라 말하지만/ 맘 다 비우고 두 팔 쪽 벌리면/ 모든 것 하늘까지도 한 발 안에 다 들어오는 것을’ 스님은 자작시 ‘허수아비’처럼 하늘을 그렇게 안았다. 무산(霧山·안개산)이 걷히고 다시 해가 났다. 거짓말처럼.
고성/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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