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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문학 월회보 3월호

우또라 2006. 2. 28. 17:48



봄의 향연

 

 

*** 장호순

 

먼 바다건너 

유채꽃 바람이

하얀 구름에 실려

산허리 걸쳐지면

겨우내 간직했던 사랑은

녹아내려

목마른 봄의 꿈을

젹셔준다

달음박질 도랑 물

새 생명을 깨우고

놀란 버들강아지

양지속에 벌써 숨어있내

 

 

 

기다림...

 

*** 장호순

 

내 앞에 시작이야 

끝을 향해 간다지만

끝을 묻는 대답엔

아무 말이 없다

그래...

삶의 끝이란 

맞이하고 기다리는 것 

그 속엔 새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어 기다리나 보다


 


이수희

 

 

 

 

 

떠도는 자의 노트

-카주라호에서-

 

이 수 희

 

쟌시역에서 잠을 자고 새벽5시 떠날 준비를 하고 나가니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릭샤를 타라고 릭샤왈라들은 외쳐댄다. 어디에서 타는지 몇 시에 있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타러간다.

어두운 시간 불빛도 제대로 없는 거리에 버스가 한 대있다. 첫차이다. 좌석이 있느냐고 물으니 물론이라고 하며 표를 내민다. - 쟌시에서 카주라호까지는 5-6시간 걸린다. 배낭을 버스위로 올리고 차에 오르니 아뿔싸 자리가 어디에 있담. 발 디딜 틈조차 없는데.....

차장한테 내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 자리를 달라.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라며 항의를 하자 그는 앉아있는 인도인에게 일어서라고 팔을 잡아끈다. 앉아있는 청년에게는 미안하지만 장거리를 서서 갈 수도 없고 그 버스를 타지 못하면 얼마나 또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니 탈 수 밖에. 또한 차장이 자리가 있다고 표를 판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했는데 엉뚱하게 피해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카주라호는 호수가 아니라 외진 시골마을이다. 편리한 교통수단인 기차도 닿지 않아 하루에 몇 번 있는 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얼마를 갔을까 눈빛이 영롱한 한 사내아이가 악수를 청해온다. 만나서 반가워요 라고 하면서, 일본인? 중국인? 하며 묻는다. 아이랑 말을 주고받으며 엄마와 같이 탄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희 집 구경을 시켜줄 수 있느냐고? 점심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아이는 엄마랑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아니 한 술 더 떠서 우리 집에 방이 있으니 거기서 자면 된다고......

차따르부르란 마을(정류장)에서 차는 선채로 갈 줄을 모른다. 한 시간을 기다리는지 두 시간을 기다리는지 이미 12시는 넘었으니 배는 고플 대로 고프고 아직 카주라호까지는 한 시간 이상을 더 가야하는데. 어느 누구도 불평 한 마디 없다. 아이가 검은 덩어리를 건네준다. 먹어보라고 하면서, 입에 넣어본다. 사탕수수로 만든 원당이다. 허기를 달래준다. 정제되지 않은 설탕이라 맛은 깊고도 풍부하다. 

아이 이름은 럭키, 아이 아버지는 버스 두 대를 소유하고 있고 우리가 타고 온 버스도 그의 소유라고 한다. 집을 보여주며 방은 12개이고 2층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전기도 특별 신청을 해서 정전이 되는 법이 없고 호트워터르(인도식발음) 가 24시간 나온다고.....

그런데 있다는 방은 창고였다. 그들은 방 1개를 쓰고 아들 셋을 두고 있지만 방 하나에 5식구가 함께 산다. 점심값을 지불하자 손사래를 친다. 돈을 받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그곳에서 자라는 청을 거절하고 서둘러 방을 구한다면서 나오려하자 그가 좋은 숙소를 알려준다면서 따라나선다. 밤에 민속공연을 보면 좋다고 이야기해준다. 거기까지 동행해주어 공연도 잘 보았다. 그러나 공연은 너무 졸렬하여 그에게 충고 한 마디 해준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달빛은 푸르건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우리를 바래다주고도 가지를 않는다. 로션도 발라보고 호텔의 수세식 화장실도 가보고.....한참을 머뭇거린 후에야 럭키는 말문을 연다. 지리책을 사서 공부를 열심히 할 테니 200루피를 달라고. 올 것이 왔다. 200루피를 건네준다. 200루피는 하루 객실요금이다.

카주라호를 제대로 구경하기도 전에 이곳을 뜨고 싶다. 무언가 속았다는 느낌에 더 있고 싶지가 않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사원들을 구경하고 떠나려 여관 문을 나서는데 럭키가 기다리고 있다. 추운데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이는 그의 아버지가 시켜서 그 모든 것을 하는 모양이다. 저녁 값, 럼주 값, 가지고 간 점퍼, 아이책값,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부쳐주리라 했던 약속, 그리고 숙박료의 절반은 그의 몫이고 민속공연도 얼마는 그의 몫으로 돌아갔으리라. 또 무엇을 요구할지 슬슬 겁이 난다. 아침 먹으러 간다라며 그의 친절을 뿌리친다. 혹시 미행이라도 하지 않나 언제 또 나타나 같이 밥 먹자 할는지 두렵다. 

카주라호를 떠날 표를 산다. 아직도 두 시간을 기다려야한다. 볼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카주라호의 미투나(남녀 교합상)상은 우릴 비웃기라도 하는 걸까? 무얼 그리 다 보려고 하냐는 듯이. 그렇게 어렵게 간 길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기다리며 가게 주인의 도시락을 엿본다. 특별한 음식이다. 하나 줄까하고 묻는다. 받아먹는다. 반가워라, 그것은 모양이 다른 손으로 빚은 들깨 참깨다식이었다. 그것이 여기에도 있으니 다식문화는 아마도 이곳에서 불교전파와 함께 우리에게 전하여져 왔으리라.

버스를 탄다. 비로소 떠난다는 안도감이 든다. 산도 구릉도 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대지-유채와 밀밭 그사이에 듬성듬성한 나무들. 문득, 피천득 선생님의 글이 떠오른다.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5월 속에 있으리니. 시간은 멈추어 어느 5월에 있었던 듯 눈은 아른 하다. 까필이란 강보에 쌓인 아기를 안고 유채 밭 사이로 꿈결처럼 아이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환상을 본다. 아기는 낳은 지 한 달 여, 내 품에 안긴 채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뚫어지게 나를 바라본다. 아기의 손을 만져보니 아주 꼭 쥐고 아기는 잠이 든다.

인도 땅은 무엇보다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이 아이는 무슨 인연으로 지금 이 버스에 나의 품에 안기어 있는 걸까. 

아이 엄마는 아이를 넘겨받고 차에서 내린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로 버스는 헉헉댄다. 기어 고장으로 시속 10킬로나 될까. 한 시간 단위로 차는 멈추어, 운전사는 차를 고치기에 바쁘다. 느린 풍경 속에 꿈결처럼 유채 밭은 이어져 까필이란 이이를 안고 아이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환상을 본다. 눈물이 돈다. 

나는 지금 오르차로 간다. 거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업을 씻으러 간다. 

하루해가 강물에 어른거린다. 강을 찾아 떠난 사람들은 오체투지로 기나긴 순례의 길을 마감한다.

수리야


 

이수희

작 품 제 목

 

등 록 날 짜

 

 

아일랜드의 수선화

 

이 수 희

 

모니카 마틴의 노래를 듣고 있다.켈트족의 언어인듯 노랫말은 알아듣기 어려웁고 제목도 모른 채 조금은 트로트 같은 느낌을 주는,그러나 나도 모르게 어느 곳으로 이끌려가는 듯하다.

그 떄 전화가 왔다.친구였다.햇살이 참 좋다고.봄이 오나보다고.그 노래는 그 친구가 알려준 곡이었다. 이 시간에 그도 나를 생각했음이겠지.저 안에 깊이 흐르는 물살과 물살이 만나고 싶어서겠지.

어느 해 봄 우리가 섬진강을 여햏하던 때였다. 매화를 보러 갔더니만 꽃은 간밤의 비에 다 떨어지고 잠 잘 곳도 여의치 못해 되돌아 나오는 데 창에 부딪는 봄비는 우릴 야릇한 감상에 젖게 한다. 강줄기 따라 하동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길을, 택시 기사는 나그네의 심사를 알기라도 하듯 장사익의 절창을 틀어준다.누구 하나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를 아무도 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쌍계사 밑에 있는 산장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며 계곡물 소리에 넋을 잃고 잠도 잃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갔다.

다음 날은 날씨가 좋아 동생이 일러준 밥집에 가서 허기를 달랬다.논두렁 길을 걸어걸어 그렇게 남녘 들판을 쏘다니다 우린 무얼 보았더랬지.봄바람에 흔들리는 얄풋한 꽃잎을 보고 그 친구는 놀랐다..수선화라고 일러주자 처음 보았다고.과연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해 빠져 죽은 나르시스의 신화처럼 반할 만하다고.....

일곱송이 수선화,좋아하는 노래다.오래 전 2월에 부르는 노래란 타이틀로 처음 나만의 편집 앨범을 만들어 선배에게 주었다. 그걸 받아 들고 선배는 깜짝 놀랐다.수선화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지만 일곱 송이 수선화란 노래는 그녀의 남편이 프로포즈를 하며 불러 주었던 노래라고.거기에 넘어 갔다고.그래서 그들은 2월에 웨딩 마치를 울렸다.

2월엔 한 장의 그림이 떠오른다.벽장 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과 함께. 안성 옛집에 걸려 있던 모나리자(그 땐 그 그림을 눈썹없는 물귀신이라 생각했다.) 그림이 그것이다.

수선화, 모니카 마틴,모나리자-내가 기억하는 이미지 세가지가 2월 속에 있다. 세 이미지는 노스탤지아란 향내를 품고 있다.버들에 물이 오르고 봄물결은 발을 간지른다.

그 때 일이 기억에 떠오른다

그 날 처음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늘 밑 꽃방석에 앉아 쉬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며 나는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디에서 이곳으로 왔을까

그러고 있자니 거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직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동굴에서 흘러나와 작은 하늘처럼 고여 있는 그곳으로

다가가,

나는 또 하나의 하늘인 듯한 그 물울 내려다 보았다

몸매무새를 가다듬고 들여다 보았더니

들여다 보았더니

아,물결 속에서 홀연 한 모습이 나를 바라보고 있더라

내가 놀라서 몸을 일으키니

그도 놀라서 몸을 일으키고

내가 기뻐하니

그도 기뻐하더라

나는 오늘도 물 위에 시선을 모으고 그 모습을 사랑하는데

한 소리가 내게 가로되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은

그대 모습이니라'

밀턴의 시집에 나오는 시구다.말결이 좋아 가끔 읊는다.

물오름의 달 2월이다.나는 나만의 노스탤지아에서 자신의 참 아름다움을 찾고 싶다.이 순간이 모든 것이 되도록'지금 여기'에 살고 싶다.

 


최수경

작 품 제 목

안흥교 (3월회보원고)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27일 05시 34분 52초

 

안 흥 교

 

최 수 경

 

여울 가장자리엔 징검다리가 있고

큰비 오면 지친 사연 나룻배에 실었던

안흥리 사람들이

건널 때 마다 흔들려 가슴 졸이던

아리랑 다리가 있었지요.

한 때 수마의 잔상이 머물고

고단한 세월이 굽이굽이 흐르던 곳

이제 잔물결에 일렁이는 추억입니다

햇살 좋은 어느 봄 날

아 누구의 선물 인가요

동쪽으로 소요산

서쪽으로 마차산이 

천지간 사철병풍으로 마주보며 

신천 가 물새들 무리지어 날아들고

낚싯대 드리운 한가로운 풍경이 좋아

간절한 눈동자로 소망하던 이 자리에

동두천의 눈부신 새벽을 여는

힘차게 솟아오른 대망의 표상입니다 


서상만

작 품 제 목

황혼에(2) 외1편 (3월 회보:시)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24일 16시 52분 39초

 

작품(1)

 

黃昏에(2)

 

서 상 만

 

그 아득한 길

죽은 듯이 살아온 미혹에

놓고 온, 피 얼룩진 목단 꽃 한 송이

고개 떨군 날

천천히, 남은 저녁 달빛 속을

그리운 사람들 그대로 두고

노새야

노새야 어딜 가느냐

밤바람에 시득시득 살을 말리며

맨발로

눈감고 가느냐, 이제

영영 돌아가느냐

몽리에 

한눈판

늙은 노새야

 

작품(2)

 

내 마음의 반란

 

서 상 만

 

그냥 잠들기도 싫은 밤,

나는 이렇게 막막한 밤이다

아무리 나를 바깥으로 내몰아도

차마 손놓을 수는 없지

내 머리 속에 모여드는 별빛이며

가늘게 들리는 개울물 소리

피 같은 시간

쉼 없이 상상하고 뱉어놓아

어떤 철학의 먼지로도 덮쌓아야해

강물이 제멋대로 넘쳐봤자, 

그 위의 강둑이 무너져 봤자,

내가 띄운 새는 그대로 날아야하고

가끔 광풍이 내 미완의 종이쪽지, 

사정없이 날려 보내도

그러면 그럴수록 내 눈은 더더욱

말똥말똥해지고

견딜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도

나도 나를 쫓아낼 수 없어, 나는

끝없이 혼란한 밤을

질근질근 씹기도 하고

삿대질하는 군중 앞에 서고도 싶다

끝내 보고 싶다

아침의

풋풋한 풀이파리 보고 싶다 


김영철

작 품 제 목

봄 . 3월 원고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24일 14시 34분 08초

 

 

김 영 철

 

칼바람 속 덜덜 떠는 민초들

양지 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애환을 그린다

허기진 배 움켜쥐고 민생고 해결을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서로 할퀸다

할퀸 상처마다 툭 툭 불어져

시뻘건 피 터져 한 맺힌 고통을 삼키고

봄을 절규하며 몸부림친다


원화윤

작 품 제 목

3월 회보 원고입니다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21일 22시 36분 03초

 

저 소리

 

-원화윤-

 

긴 잠 깨는

깊은

땅 속에

군불 지피나봐

딱딱한 땅을

밀어 올리는

힘찬

새싹들 소리

시꺼먼

나뭇가지에

팡팡

터지는

잎눈들 소리

얼음장 밑에서

소곤대는

물소리에

하품하는

버들강아지

눈 비비는 소리

훈훈한 입김

감돌고

따스한 햇살

소곤대는

산비얄에

들판에

요기 조기

색색 빛깔로

터지는

저 웃음소리

오!

경이로운

봄 뜨락의 화음.

********

 

우수

 

-원화윤-

 

새 해

밝은 아침

빗장 활짝 여니

바위처럼 굳었던 

대동강도

녹이고

긴 잠자리 터는

삼라만상

만물

본연의 자세로

자리 매김의

약동

새 생명의

물꼬 트는

우수는 

화신의 집배원.

2006. 02. 19.

********

 

부부(수필)

 

-원화윤-

 

요즈음 내 기분은 점멸하는 황색 신호등처럼 불안하다. 맨 처음 남편이 이 병을 앓게 된 때가 팔월 초순이어서 그 후 팔월은 마음에서 지우고 싶었던 달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엔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 너무나 놀랐다. 그 동안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어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는가 했는데 고열과 식은땀에 혈당치는 자꾸 떨어져 악몽 같은 그 순간이 다시 올까 생각하니 온 몸이 마구 떨려 왔다.

장마가 끝나려는 무렵, 훅훅 달아오르는 지열에 숨이 막힐 듯한 휴일 한 낮, 부랴부랴 응급실로 실려 가야 했다. 다행히 신속한 응급조치로 안정을 되찾고 잠에 빠졌지만 창백한 얼굴에 초췌한 모습의 환자는 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 날 따라 빈 병실이 없어 다섯 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원실로 옮겨졌다. 그 동안의 꾸준한 통원치료에 환자도 잘 견뎌 주어서 십여 년 만에 병실 생활이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 감사했다.

오랜 병시중에 나도 긴장이 풀렸던 것일까. 간호를 소홀히 한 내 탓이 아닐까 싶어 죄스러운 마음 가득한데 이제는 얼굴이 익은 간호사들의 친절이 긴장과 불안을 덜어 주었다. 한 시름 놓고 나니 바위를 안고 누운 듯 몸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정신을 말짱한데 손끝 하나 꼼짝하기 싫고 눈꺼풀은 자꾸 덮인다. 아, 이대로 한 삼 일간만 죽었다가 깨어나면 좋겠다 싶다.

월요일 오전 회진 시간, 매달 외래 진료실에서 만나던 의사선생님을 병실에서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가웠다. 담당의사선생님과는 긴 세월 동안 인연이 깊다. 미소로 묻는 안부에도 죄인이 심정이었다. 검사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며칠 영양제 주사를 맞으며 안정을 취하면 곧 좋아질 거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화색이 도는 환자를 보고 가족들은 하나 둘 돌아갔다. 

적막한 병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곤하게 잠든 환자의 얼굴이 안쓰럽다. 오랜 병시중은 내게 인내심도 가르쳐 주었지만 많은 의료상식과 처치법도 동시에 알려 주었다. 이젠 어지간한 상황엔 의료진 못지 않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환자의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그 날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잠시 외출 할 때도 구급약통을 지참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면 내가 전생에 지은 업보가 무엇일까.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때면 최면술에 결려보고도 싶었다. 하루가 열리고 하루가 닫히는 시계의 초침소리에도 예민해지던 그 긴 세월, 축적된 고뇌의 여파였을까. 병원에 머무는 동안은 매번 짬짬이 시간 내어 검사도 받고 치료도 받아야 했었다. 그럼에도 늘 무거운 마음에서인지 아직도 개운치 않은 결과다.

퇴원하는 날 뿌연 창 밖을 내다보니 지상 주차장 바닥이 흥건히 젖어있었다. 외등을 적시고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비는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창문 유리창을 뚫을 것 같던 장대빗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상념에 마음은 창문처럼 젖어든다. 오랜 세월 번갈아 병원 신세를 지며 소중한 시간을 이슬에 젖은 밤 길 걷는 것 같은 삶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간 모진 고뇌를 어떻게 견디며 지켰을까. 만감이 교차하는 감회는 목줄대가 얼얼하다.

모두가 내 부덕의 소치라 겸허하게 감수하면서도 때론 보이지 않는 신이 야속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운명이요 팔자소관이라면 기꺼이 순응해야 되지 않겠는가. 뒤늦은 깨달음은 환자보다도 호된 홍역을 치른 뒤 비로소 주어진 삶에 다소곳이 일과에 전념하게 됐다. 매사 집중하게 하는 무언의 채찍은 오로지 나를 지탱하게 해준 글쓰기다. 이렇듯 숨죽이며 울먹이는 내 삶의 색깔과 무늬는 어떤 빛이며 어떤 모양일까.

이런 내게 유일할 탈출구인 글쓰는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매일 원점의 일과를 끝내면 단걸음에 달려가는 곳이 글 밭이다. 이랑에 묻혀 잡풀도 뽑아내고 돌도 골라내며 색깔과 향기를 입히고 별빛과 얘기하며 글 포기를 가꿨다. 잎 트면 줄기를 키워 봉오리 빚어 꽃을 피우고 물을 주며 매사 부족해 옹색한 마음 그릇을 향주머니로 채웠다. 내 유일한 쉼터인 글밭에서 아픔에 젖어 스스로를 토닥이면 삶이란 그리 좋은 것도 또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황색 신호등은 준비의 예시요 희망의 전재라는 것을, 그러면서 차츰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신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이 만큼의 건강이라도 허락된 것이 감사하고 매일 새날 밝은 햇살을 맞을 수 있음도 감사하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다. 어쩌면 전생에 내가 지은 업보를 그가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런 불편도 기꺼이 견딜만해 진다. 내 문화에 맞는 사고로 시야를 넓혀 본연의 임무에 최선 다 해 충실할 것이다. 고개 숙인 낮은 마음으로.

2005. 08. 13.

박미란

작 품 제 목

쉿!(3월 회보용입니다.)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21일 10시 00분 24초

 

쉿!

 

박미란

 

쉿! 가만가만

마음을 열고 들어보아요

땅 속 깊은 곳 생명의 소리

쉿! 가만가만

오감(五感)을 열고 느껴보아요

따스한 햇살에 묻어오는

생명의 강렬함을

쉿! 가만가만

손을 뻗어 창공(蒼空)을 잡아보아요

어쩌면 바람 타고 떠다니는

봄 처녀의 마음이 걸릴지 몰라요. 


김소향

작 품 제 목

니는? (3월 회보)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19일 16시 14분 52초

 

 

니는?

 

김 소 향

 

사는 동안 우리들은 무엇을 향해 분명히 달려가지만  

진정한 나를 발견하지 못해 나의 빛깔을 잊은채  

허둥지둥 바쁘게 살아간다 

 

 

사는 동안 크고 작은 일 들 괴로워하면서 

나 돌아 볼 시간없이 바쁘게 만 살아간다 

 

 

작은 꿈 이루어지기 소원하면서 

바쁘게만 살아 온 삶 조금씩 조금씩 느리게 살고싶다 

 

 

어디에 나를 둘것인가?  

 

 

몇십년을 살아왔지만 아직 니는 모르리? 

 

김용재

작 품 제 목

아라우카리아 (3월원고)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16일 15시 57분 24초

 

 

아라우카리아 

 

김 용 재

 

연약한 몸에 

솔잎으로 갈아입고 

창가로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 가득 안고 

노래부르니 

열대 야자수는 

오시는 님 기다리나 

아라우카리아 

 

백자 화분 속에 

흙 내음 맡으며 

먼 하늘 노을져 오면 

잃어버린 향기에 

침묵으로 빚은 

꽃나무 

 


이순화

작 품 제 목

방황 (3월회보/ 시)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10일 12시 46분 52초

 

방 황

 

이 순 화

 

이전에는 마음 둘 곳이 없어

외로웠으나

시방은 마음 갈 곳이 없어

고독하나니,

대저 마음이란

한 곳에 머무르는 일도 어렵고

떠돌아다니는 것도 힘겨운 모양이라

마음의 그릇 삭아 없어지는 날

그날에나 끝나려는 게지

이 내 방황은,

이전에는 방황에 이끌려 

외로웠으나

시방은 방황에 갇혀

더욱 고독하나니...

김정자

작 품 제 목

오늘의 일기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09일 14시 44분 15초

 

오늘의 일기

 

김 정 자

 

문이 열렸다

마구잡이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었다 

덜컥하고 가슴이 내려앉고

순식간에 혓 바닥에서 엉기는 짠내로 입안이 얼얼했다

몇 번을 꿈뻑대던 눈동자가 햇빛을 모았다

몸뚱이의 구석구석이 근질거렸다

떳다 감았다 하는 물고기의 모습에 지느러미가 솟아났다 

기막히게 흔들리고 있는 색색의 산호초 

바닷말들이 희미하게 웃고 

야광의 빛을 내는 날렵한 물고기들

출구를 찾는 듯하다 이내 내 빼는 모습들이 눈에 익어보였다

슬슬 숨이 차오른다 

되돌아 갈 길이 낯설다 싶더니 

눈앞에 또 섬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곳곳에 박혀 물위로 숨을 토해내는 섬들의 군락

섬은 

진즉부터 뿌리를 내렸다 했으나 본디 하나였으리라

섬을 기어오른다 

뿔뿔히 흩어지는 빛을 따라 

기어오르는 내내 저는 젖은 줄도 모르고

발가벗은 채 지느러미를 다듬는다

최상경

작 품 제 목

할머니의 좌판(3월 회보용)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07일 16시 28분 46초

 

할머니의 좌판

 

최상경

 

해는 기울어

할머니의 좌판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장구경온 사람들도

하나 둘 돌아가는

한산한 장터

할머니와 좌판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시간의 흐름을

막아서고 있다

건 듯 부는 바람에도

몸을 떨며

가래 끊는 기침소리로

모진 삶을 한탄하는데

팔리지 않은 나물은

할머니의 발길을 잡아

늙은 손으로

늙은 얼굴 만지며

먼 산자락 해지는

하늘만 바라본다

하염없이 바라본다


김태준

작 품 제 목

번역시-첫사랑(3월 회보용)

등 록 날 짜

2006년 02월 07일 09시 46분 50초

 

 

First love

 

John Clare(1793~1864)

 

I ne'er was struck before that hour

With love so sudden and so sweet,

Her face it bloomed like a sweet flower

And stole my heart away complete.

My face turned pale as deadly pale,

My legs refused to walk could I ail?

My life and all seemed turned to clay.

And then my blood rushed to my face

And took my eyesight quite away,

The trees and bushes round the place

Seemed midnight at noonday.

I could not see a single thing,

Words from my eyes did start-----

They spoke as chords do from the string,

And blood burnt round my heart.

Are flowers the sinter's choice?

Is love's bed always snow?

She seemed to hear my silent voice,

Not love's appeals to know.

I never saw so sweet a face

As that I stood before.

My heart has left its dwelling-place

And can return no more.

 

첫사랑

 

번역:김태준

 

그 시간 이전에 나는 결코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네

그렇게 갑작스럽고 그토록 달콤한 사랑으로,

그녀의 얼굴은 사랑스런 꽃처럼 피어났고

내 마음을 송두리째 훔쳐 가 버렸다네.

내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해졌으며,

내 다리는 멀리 달아나기를 거부했고,

그녀가 쳐다봤을 때, 나는 무엇을 번민할 수 있었을 것인가?

내 삶은 온통 흙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그런 후 내 피가 내 얼굴로 솟구치고

그리고 내 시각을 아주 멀리 쫓아 버렸지,

나무와 덤불이 그곳을 둘러싸서

대낮이 한밤중 같았다.

나는 한 가지도 볼 수가 없었네,

언어들이 내 눈에서부터 시작했으며-----

그들은 현악기의 줄에서 울리는 화음처럼 말했고,

그리고 피가 내 심장주위를 태웠다.

꽃들은 겨울의 선택인가?

사랑의 침상은 항상 눈(雪)이련가?

그녀가 내 침묵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구나,

사랑의 호소를 모른 체.

나는 그렇게 사랑스런 얼굴을 본 적이 없네,

내가 이전에 일어섰던 것처럼.

내 심장은 제 거처를 떠났고

그리고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구나.

 우리 가정

 

최인희

 

우리 가정에는 장애물도 있다지만

어찌 나 한 사람뿐이랴

칠십 갑자 행복

할머니로서 반갑구나

아이들로 울타리 치고

비둘기집 속에서 사는 기쁨

세월따라 늙음도

웃음 피워 놓고 웃고 살리라

가난이 쌓여도

태양도 이슬도 내 집에 오면

서로가 즐기는 행복의 가정

동백꽃

하얀 눈 동자님들 속에서 붉은 입술

방긋이 웃으며 피어나네

수줍은 꽃봉오리 필 듯 말 듯

아직도 부끄러운가

그대 아직은 보이지 않아

흰 눈 털고 내일은 오신다네요

새파란 푸른 님 들러리 속에

화촉을 이룰 것이로다

하얀 눈송이

손님 되어 축복해 주세요  


산에게 배우다

 

박 경 자

 

인간들에  내어주어 허물벗어 밋밋한 등줄기

가을에 교활함을 흰눈으로 덮어 다 용서 해버린

누군가 만져만 주면 부셔져

날아갈것만같은 아픔

겨우내 생각타 못해 뿌리로

다시 빨아 올리기로한 生

동계올림픽 끝나면 바람 그리고 봄

오겠지

폐속 깊숙히

질펀한 분비물 미끌거리고

젊은피 펌프질로 봄을 토해내면

수런수런 옆집 아좀마 흉도 몇 사흘이오

鹽藏한 겨울이 가지마다 미련을 걸어놓고

벌써 어린 산새 한마리 키우고 있소

아직은 이백그람의 작은배 채워줄

식량이 없어 걱정이오



 

요즈음 우리는 

 

 

1. 경기예총 정기총회 

 지난 2월 24일(금요일) 회장님께서 수원에서 있었던 경기예총 정기총회에 참석 하셨습니다. 

 

 

2. 예총회장 이․취임식 

 지난 2월 25일(토요일) 시민회관 청소년회관에서 예총회장 이․취임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예총회원들과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이채혁님이 신임 예총회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3. 감사패 수상 

 김태준 부회장님(전 예총회장님)께서 그동안 예총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으셨습니다. 

 

 

 

 

 

 

편집후기 

 

 

대동강물이 녹는다는 우수도 지나고 산 넘어 남쪽에서는 봄바람이 넘실거리는 봄의 문턱입니다. 꽃은 산과 들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가슴에도 활짝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봄나들이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요? 

3월 회보에도 이름이 보이지 않는 회원님들이 있어 아쉬웠지만 4월 회보에서는 그동안 동면(冬眠)을 취하시던 회원님들도 새로운 작품으로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競 - 

 

다음 모임 안내 

 

 

일시 : 2006년 4월 7일 금요일 오후 6시 

장소 : 길손식당(문화극장 건너편). Tel : 865-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