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자의 노트
-카주라호에서-
이 수 희
쟌시역에서 잠을 자고 새벽5시 떠날 준비를 하고 나가니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릭샤를 타라고 릭샤왈라들은 외쳐댄다. 어디에서 타는지 몇 시에 있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타러간다.
어두운 시간 불빛도 제대로 없는 거리에 버스가 한 대있다. 첫차이다. 좌석이 있느냐고 물으니 물론이라고 하며 표를 내민다. - 쟌시에서 카주라호까지는 5-6시간 걸린다. 배낭을 버스위로 올리고 차에 오르니 아뿔싸 자리가 어디에 있담. 발 디딜 틈조차 없는데.....
차장한테 내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 자리를 달라.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라며 항의를 하자 그는 앉아있는 인도인에게 일어서라고 팔을 잡아끈다. 앉아있는 청년에게는 미안하지만 장거리를 서서 갈 수도 없고 그 버스를 타지 못하면 얼마나 또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니 탈 수 밖에. 또한 차장이 자리가 있다고 표를 판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했는데 엉뚱하게 피해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카주라호는 호수가 아니라 외진 시골마을이다. 편리한 교통수단인 기차도 닿지 않아 하루에 몇 번 있는 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얼마를 갔을까 눈빛이 영롱한 한 사내아이가 악수를 청해온다. 만나서 반가워요 라고 하면서, 일본인? 중국인? 하며 묻는다. 아이랑 말을 주고받으며 엄마와 같이 탄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희 집 구경을 시켜줄 수 있느냐고? 점심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아이는 엄마랑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아니 한 술 더 떠서 우리 집에 방이 있으니 거기서 자면 된다고......
차따르부르란 마을(정류장)에서 차는 선채로 갈 줄을 모른다. 한 시간을 기다리는지 두 시간을 기다리는지 이미 12시는 넘었으니 배는 고플 대로 고프고 아직 카주라호까지는 한 시간 이상을 더 가야하는데. 어느 누구도 불평 한 마디 없다. 아이가 검은 덩어리를 건네준다. 먹어보라고 하면서, 입에 넣어본다. 사탕수수로 만든 원당이다. 허기를 달래준다. 정제되지 않은 설탕이라 맛은 깊고도 풍부하다.
아이 이름은 럭키, 아이 아버지는 버스 두 대를 소유하고 있고 우리가 타고 온 버스도 그의 소유라고 한다. 집을 보여주며 방은 12개이고 2층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전기도 특별 신청을 해서 정전이 되는 법이 없고 호트워터르(인도식발음) 가 24시간 나온다고.....
그런데 있다는 방은 창고였다. 그들은 방 1개를 쓰고 아들 셋을 두고 있지만 방 하나에 5식구가 함께 산다. 점심값을 지불하자 손사래를 친다. 돈을 받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그곳에서 자라는 청을 거절하고 서둘러 방을 구한다면서 나오려하자 그가 좋은 숙소를 알려준다면서 따라나선다. 밤에 민속공연을 보면 좋다고 이야기해준다. 거기까지 동행해주어 공연도 잘 보았다. 그러나 공연은 너무 졸렬하여 그에게 충고 한 마디 해준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달빛은 푸르건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우리를 바래다주고도 가지를 않는다. 로션도 발라보고 호텔의 수세식 화장실도 가보고.....한참을 머뭇거린 후에야 럭키는 말문을 연다. 지리책을 사서 공부를 열심히 할 테니 200루피를 달라고. 올 것이 왔다. 200루피를 건네준다. 200루피는 하루 객실요금이다.
카주라호를 제대로 구경하기도 전에 이곳을 뜨고 싶다. 무언가 속았다는 느낌에 더 있고 싶지가 않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사원들을 구경하고 떠나려 여관 문을 나서는데 럭키가 기다리고 있다. 추운데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이는 그의 아버지가 시켜서 그 모든 것을 하는 모양이다. 저녁 값, 럼주 값, 가지고 간 점퍼, 아이책값,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부쳐주리라 했던 약속, 그리고 숙박료의 절반은 그의 몫이고 민속공연도 얼마는 그의 몫으로 돌아갔으리라. 또 무엇을 요구할지 슬슬 겁이 난다. 아침 먹으러 간다라며 그의 친절을 뿌리친다. 혹시 미행이라도 하지 않나 언제 또 나타나 같이 밥 먹자 할는지 두렵다.
카주라호를 떠날 표를 산다. 아직도 두 시간을 기다려야한다. 볼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카주라호의 미투나(남녀 교합상)상은 우릴 비웃기라도 하는 걸까? 무얼 그리 다 보려고 하냐는 듯이. 그렇게 어렵게 간 길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기다리며 가게 주인의 도시락을 엿본다. 특별한 음식이다. 하나 줄까하고 묻는다. 받아먹는다. 반가워라, 그것은 모양이 다른 손으로 빚은 들깨 참깨다식이었다. 그것이 여기에도 있으니 다식문화는 아마도 이곳에서 불교전파와 함께 우리에게 전하여져 왔으리라.
버스를 탄다. 비로소 떠난다는 안도감이 든다. 산도 구릉도 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대지-유채와 밀밭 그사이에 듬성듬성한 나무들. 문득, 피천득 선생님의 글이 떠오른다.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5월 속에 있으리니. 시간은 멈추어 어느 5월에 있었던 듯 눈은 아른 하다. 까필이란 강보에 쌓인 아기를 안고 유채 밭 사이로 꿈결처럼 아이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환상을 본다. 아기는 낳은 지 한 달 여, 내 품에 안긴 채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뚫어지게 나를 바라본다. 아기의 손을 만져보니 아주 꼭 쥐고 아기는 잠이 든다.
인도 땅은 무엇보다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이 아이는 무슨 인연으로 지금 이 버스에 나의 품에 안기어 있는 걸까.
아이 엄마는 아이를 넘겨받고 차에서 내린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로 버스는 헉헉댄다. 기어 고장으로 시속 10킬로나 될까. 한 시간 단위로 차는 멈추어, 운전사는 차를 고치기에 바쁘다. 느린 풍경 속에 꿈결처럼 유채 밭은 이어져 까필이란 이이를 안고 아이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환상을 본다. 눈물이 돈다.
나는 지금 오르차로 간다. 거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업을 씻으러 간다.
하루해가 강물에 어른거린다. 강을 찾아 떠난 사람들은 오체투지로 기나긴 순례의 길을 마감한다.
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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