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6회 공간시낭독회 차례***
<시인의 산문. 24>
이무원: 들꽃 대학생과 이교수
<상임시인>
신미균: 치매
이경희: 은하수
이무원: 개심사
이문연: 너희는 거세된 황소
이미산: 어지럼증
이은경: 베어내지 못한 것들
이종성: 감자 속에 내리는 비
정겸:
정준영: 팥죽 같은
최영규: 광진리에 가면
홍사안: 풍경- 숲 속의 향연
김동호: 팔월 숲 속에서
<초대시인>
조현석: 설렁탕 한 그릇 / 울다 염소
안차애: 나는 다혈질이다 / 緣
<상임시인>
김용길: 씨앗속의 꽃
김정미: 수화를 듣다
문창길:
박무웅:
박해영: 길 떠나는 길 위에서
박희진: 사행시 -2수
배인환: 착시
상희구: 싸리끝대
서영미:
설태수: 빠이빠이
성찬경: 본질과 현상
손현숙: 핵으로 쓴 시
윤종대: 객
편집후기:
일시; 2007년 8월29일 수요일 오후 6시
후원; 한국현대문학관, 서울시문화재단
<시인의 산문. 24>
들꽃 대학생과 이 교수
이무원
나는 들꽃 대학교 1학년 초롱 반 학생입니다.
들꽃 대학의 설립자는 이 서하입니다. 교수 겸 대학 총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들꽃 대학교 란 학교 이름도 손수 짓고 교표도 멋지게 도안을 하여 만들었습니다.
교표는 동그라미 속에 들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고 들꽃 좌우로 대칭이 되게 점이 두 개 찍혀 있습니다. 그 점은 구름이라 합니다. 언뜻 보면 사람의 미소 짖는 얼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들꽃 대학의 학생은 2명입니다.
할머니와 나만 입학을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할아버지 집 안방 문에 노인대학교 들꽃 대학교 초롱반이라 쓴 간판을 붙이므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 나는 교수님(서하)과 같이 스케치 북을 죽 찢어서 가방도 만들고 국어 공책, 알림장도 만들었습니다. 필통까지 만들고 나니 힘이 다 빠져서 수학 공책은 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할머니 것과 내 것 두개씩을 만들었으니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님은 집중해서 전심전력을 다 하는 모습입니다.
가위, 칼, 스카치테이프, 종이, 색 연필 등 소품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끈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여 멋진 노란색 긴 끈을 찾아다 주었더니 그 것을 아까워하지도 않고 네 등분으로 잘라서 스카치테이프로 가방에 붙였습니다. 정말 멋진 가방 끈이 되었습니다.
가방을 거는 못도 만들었습니다 . 연두색 노란색종이를 돌돌 말아서 할아버지 방 큰 유리문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떨어질 텐데” 하고 걱정을 했더니 테이프를 많이 붙이면 된다고 하더니 정말 필통과 국어 공책, 알림장이 들어 있는 가방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방에는 다섯 가지 색깔로 들꽃대학이라 쓰고 그 밑에 자기 이름을 썼습니다. 내 이름은 이 동건 으로 하자고 서하가 제안 했습니다. 영화배우 장 동건 씨가 생각난 모양입니다. 할아버지 성은 이 씨니까 이 동건 인데 내가 가방에 박 동건 이라고 잘 못 써서 핀잔을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박순이라고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우선 이 교수가 만든 할머니 국어 공책을 볼까요?
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1-5 초롱 반
박순이
국 어
표지를 넘기면<‘간호사’ 하면 생각나는 것에 O 표 하세요>라고 쓰여 있고 전화기 ,주사, 스위치, 병원, 구급차. 핀셋 그림이 하나 하나의 원 속에 그려져 있고 그 그림 중앙에 멋진 간호사가 모자를 쓰고 두 손을 벌리고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글씨를 바르게 따라 쓰세요 >라고 쓰고 연필로 원고지를 만들고 나비, 별이란 글씨를 써 놓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비와 별 사이에 한자를 띄워 쓴 점입니다.
필통은 스케치 북 표지로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양쪽을 호치 케이스로 찍고 두 개의 고무줄로 감아서 입이 잘 벌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쟉크를 찾더니 그 것이 없으니까 이서하 교수가 생각해 낸 것입니다. 할아버지 필통은 반짝이 끈으로 두 번을 묶었습니다.
첫 수업은 밤 9시쯤에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할머니가 일이 많이 밀려서 그 일을 끝마치고 나서 수업을 했기 때문에 늦어졌습니다.
이 서하 교수는 간이 칠판에 두 자리 수 더하기, 빼기 문제를 내고 학생들은 손을 들어 그 문제를 푸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문제는 할머니가 먼저 풀었으나 엉터리없이 틀렸기 때문에 이 교수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으면서 자세히 정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음 문제는 내가 거뜬히 맞추자 “잘 했습니다” 하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수업 이 끝나고 이 교수님은 알림장을 꺼내도록 지시하더니 받아 적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6년 7월 1일 토요일
1, 내일 준비물 없음.(글씨를 쓸 때 마침 표를 꼭 찍으라고 당부함)
2, 내일 수학, 국어, 챙겨 오세요.
3, 차조심, 길조심.
4는 없습니다.
이 서하 교수님은 금릉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다음날 이 교수가 자기 집으로 가기 전에 들꽃대학 수업을 한 시간 더하기로 약속했으나 만화 영화를 보다가 공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작란키 많은 박순이 학생이 언제 공부하느냐고 물었더니 다음 토요일 까지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가버렸습니다.
할아버지 방에는 들꽃대학교 가방 두개가 유리창에 매달려 있습니다.
2006.7.2.
치매
신미균
서버와 연결 중......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서버와 연결 중......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서버와 연결 중......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주소를 다시 입력해 주십시오
-귀하는 일정한 시간동안
주소를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 .......
은하수
이 경 희
한여름 밤
하늘밭에
은빛 눈가루 뿌린 듯
부시게 강따라 흐르던 꿈
북두칠성 별 길에
금을 그으면
은두레박 되어
은하의 맑은 꿈 퍼올리네
놓칠세라
별똥 별
억만리 꿈 싣고
저 언덕 어디쯤 서성일까
아직도
아득히
설익은 꿈 안고
은하에 잔잔히 잠기고 싶어라
개심사(開心寺)
이무원
닫힌 마음 열겠다고
개심사 찾아와
일주문 문고리 잡고 안을 보니
마음은 보이지 않고
문 뒤에 문이 또 하나 있어
그 문 열고 들여다보니
문 뒤에 문이 또 하나 있다
그 뿐인가
문 마다 사천왕이
사방에서 지키고 있으니
나를 가두고 있는 문
한 쪽 끝을 살그머니 밀고
대웅전 오르는 마당 한 구석
연못 속 드려다 보니
목 백일홍 엉킨 가지에
걸어놓은 꿈
꽃이 피길 기다리며
겨우내 얼었던 산이 얼굴을 씻고 있다
나도 따라
감춘 거울 꺼내 보긴 하였으나
너희는 거세된 황소*가 아니니라
이 문 연
아직도 이 사막별에서 머뭇거리는가 이제 나는 은하계에 빗방울을
보내어 지치고 마른 모래알 같은 별들을 적셔주리라 애초에 너희의
양식은 이데올로기의 잡풀이 아니며 적멸의 고고한 목탁소리도 아니
요 요행으로 마법의 신기루나 좆는 그러한 속물이 아니니라 이제 지
긋지긋한 공중부양의 모습으로 플레이아데스의 성단과 페르세우스
자리의 귀퉁이를 기웃거리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알데바란**을
데리고 크레타로 가리니 가자, 저 길목에서 히아데스***의 처녀들이
꽃을 들고 나를 감싸고 춤을 추고 있지 않느냐 이제 나는 유프라테
스강을 따라 메소포타미아로 다시 흘러들 것이다 지난 시간은 더디
었으나 가장 밝게 빛나는 알키오네****의 불빛이 언제나 그랬듯
*황도대의 두 번째 성좌 **황소자리의 알파 별 ***고대 중국의
열아홉번째 별자리인 필수(畢宿) ****녹황색의 삼등성
어지럼증
이미산
창문,
너 울고 있구나 나 모르게 울고 있구나
너를 통과하는 것들 모두 울음이 되는구나
나무가 울고 꽃이 울고 바람이 몰래 울고 가는 동안
적요한 오후가 흔들리며 네 몸을 통과하는구나
전등불,
너 미쳐가고 있구나
영혼의 핏덩어리 달달 볶아 가루로 부서지고 있구나
낄낄거리며 네 발등에 뿌려대고 있구나
뿌릴수록 맑아지는 정신의 줄기 하나 숨기고 있구나
아가리 찢고 나오는 허연 광기가 내 어둠을 불러내는 몸이었구나
구석으로 밀려난 것들 한순간 존재의 중심이 되는구나
낯선 절규도 잠시 낭만이 되는구나
벽은 수직을 거부하며 등뼈를 뽑아 흔들고
바닥과 천장이 껴안고 막춤을 추며 허공을 조롱하고
주머니마다 뿌리지 못한 씨앗들 장마철 독버섯처럼 부풀고
무료한 시간이 시계 밖으로 흘러넘치고
허공이 분열된 시계 침들에 찔려 픽픽 쓰러지고
저 힘찬 목탁소리 산을 흔들며 뚝뚝 부러지고
질긴 뿌리 하나가 나를 매달고 훨훨 날아다니는 구나
내가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있구나
베어내지 못한 것들
이 은경
제초기의 기계음이 화단의 단풍나무 밑을 지난다
두통을 앓는 봄날
한쪽으로만 휩쓸려 다니던 금이 간 물살들이
제초기의 톱날 속으로 기어들어 앉는다
풀물이 들 듯
슬픔의 독이 스며 오르듯
깨문 입술 위에 푸른 멍의 꽃이 피는 한낮
허리를 베인
잔디에서 올라오는 풀의 냄새
그곳에선, 박하향이 난다
잔디밭은
베어져 나간 자리만큼 가지런해졌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꽃가지를 떨어져 나갔던
젖은 사과 꽃잎들
자꾸만 눈가에 와 달라붙는다
감자 속에 내리는 비
이종성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 속에는
한차례 소나기가 내린다.
후두둑 후두둑 밭둑에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
호미의 흙을 씻고, 캐다 만 알이 하나씩 둘씩
맨살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나는 어느새
노란 양푼을 앞에 둔 점심 마루에 앉아 있다.
이 세상 가장 소중한 얼굴들 다 있어
더는 바랄 것이 없기에 나는 무연히 비를 바라본다.
지상에 내리는 빗소리가 말씀 없는 엄니와 아부지의
감자를 품고 있는 마음속의 속말임을 알고
자줏빛 흰빛 생각의 껍질을 벗기며
침묵 속으로 들어가 귀 기울여 듣는다.
흙속에 꼭꼭 묻혔다 이런 장엄한 비에 캐어져라.
호미를 잘못 만나면 상처를 받을 것이요
제대로 된 농사꾼을 만나면 씨감자가 될 것이다.
네가 희면 꽃도 흴 것이고, 자주면 알도 그럴 것이다.
비와 흙냄새가 풍기는 엄니와 아부지의 몸에서
나는 그렇게 갓 캐어진 감자로 뽀얗게 흙을 씻었다.
지금 먼 길을 놔두고 걸음을 잃어버린 아버지
몸 씻겨 드리고, 감자 한 개 잡수시는 동안
턱이 닳아 반질거리는 기억의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그때의 비를 바라보고 있다.
팥죽 같은
정준영
팥죽더러
팥죽이 아니라 하면
그 팥죽
붉은 빛 어찌 다 감추나
사랑더러
사랑이 아니라 하여
떠날 수 없었네
떠날 차비가 없었네
차가워진 그대에게
전화를 했네
그 차비
그대에게 구걸 했었네
광진리(光津里)에 가면
최 영 규
작은 포구인 광진리에 가면
바다로 바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도랑이 하나 있다
넓은 백사장에 실금처럼 반짝이며 흐르는 도랑
스며버릴 듯 가는 물줄기지만 언제나
뚜렷하게 바다와 만난다
때때로 큰 파도로 바닷물이 역류하기도 하지만
도랑은 이내 제 물줄기를 찾는다
바다의 길고 긴 손끝과 마을의 작은 가슴이 만나는 형상
도랑 옆 모래톱에 앉아보면,
광진리를 찾아오는 모든 것들이
넓디넓은 바닷가를 놔두고
이 작은 도랑을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둥근 바다를 힘들여 넘어오는 아침이며
돌을 얹은 지붕을 흔들어대는 바람
푸른 달밤이며, 연두빛 구름
밤을 새우는 오징어배의 눈부신 불빛
깊은 바다의 수압에 눌려 찌그러진
심해어의 야광 눈빛까지도 이 도랑을 통해
光津을 찾아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포구인 광진리에 가면
바다의 마음과 마을의 마음이 만나고 있는
작은 도랑이 하나 있다.
注) 光津里-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에 있는 작은 포구
풍경
-숲속의 향연
홍 사 안
쨍쨍한 하늘과 마주 한 숲은
온갖 생명의 소리로
가득 차 있는 득음得音의 세계
깊은 골짜기에도 능선에도
세상은 온통 눈부신 초록 물결
그 안의 낮아진 자리에서
철따라 피고 지는 온갖 꽃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다정한 벗으로
소나무 상수리나무 전나무 떡갈나무
헤일 수 없이 많고 많은 나무들의 발목
골고루 적셔주는 숲속은
가뭄에 단비 내려 줄 이랑
남모르게 차곡차곡 만들어 놓고
홍수에 견디어 내도록
속살까지 지켜주는 어머니 사랑
한 방울씩 맑은 이슬로 빚어져
적요寂寥로 출렁이는 숲속의 향연에
하루에 한 번씩 풍덩 빠지고 싶다
가끔씩이라도 온전히 취하고 싶다
대지에 생명수만 뿜어내는
그 숲이고 싶다.
팔월 숲 속에서
(수리산 3-19)
김동호
팔월, 시원한 숲 속
장마 뒤끝이라 더욱 시원한 숲 속
그런데 모기 파리가 왜 이렇게도 극성인가
쫓다 피하다 싸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은 결국 싸운다는 것. 그들이
바라는 것은 나의 완전 항복일 것이다
그렇담 나 이쯤서 아예 완전 평화가 되어줄까
그러나 모기 한 마리 급히 달려와서
내 귀속에다 소리친다. 그런 평화는 싫다고
하기야 그렇다. 생명 넘쳐나는
이 좋은 지구에서 우리가 만났으니까 그렇지
생명이라고는 그림자도 볼 수 없는 금성 화성
등에서 만났다면 나 너무나 반가워 너의
잘록한 허리를 껴안고 막 울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사랑이란
맹금 맹수들이 제 몸속으로 영접할
대상 아니면 절대로 싸우지 않는 것처럼
싸움으로 시작해서 同化로 놀다가
代謝로 끝나는 七情의 여로 같은 것
나 처음 친구를 만날 때도 그랬고
애인 만날 때도 그랬고 새로운 음식물
내 위속에 들어올 때도 그랬거니
자식 궁 짓는 일에 바쁜 암놈 모기야
너도 암컷 맹금 맹수들처럼
맹렬히 달려들어 내 피도 조금 뽑아다가
예쁜 네 새끼 갈비뼈 빚는데 보탬으로 써라
뱀 개구리 다 죽고 벌 나비도 독한 살충제로
다 죽어 가는 이 거대한 화학 공장 같은 땅에서
잠자리를 부르는 너의 생태적 존재 하나 만으로도
너는 나의 피 요구할 권리 충분히 있으니
<초대시인>
설렁탕 한 그릇
조현석
칠순이 코앞인 반백의 아버지와 모처럼 점심 먹겠다고
꿀렁거리는 차를 끌고 왕십리에 갔다
어버이날인 오늘은 언제부턴가 아버지날이 되었다
기름때 묻은 장갑으로 코 밑을 문댔는지 검댕이 몇 줄 박힌 얼굴로
같이 늙어가는 아들 보며 씨익 눈웃음 건넨다
직원도 없이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한다고
옆 가게 주인이 말걱정을 건넸다
손 씻고 오랜 만에 설렁탕이나 한 그릇 하자며 앞장선다
40년 전통이라는 빛바랜 간판 문구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푹 고아진 설렁탕을 놓고
서로 수저만 놀렸다 벌써 15년째 혼자 사는 아버지가
자신의 뚝배기에서 건져낸 고기 몇 점을
아들 뚝배기에 넣어주던 그 눈빛이 반짝거릴 그때
왜 따로 살고 있는 아들 생각이 났을까
오늘 같은 날 안부 전화나 문자 한 통 없는 그 놈
고깃점이 목구멍에 컥컥 걸리는
어머니 없는 어버이날
늙어버린 아버지와 앉아 식어가는
설렁탕을 먹는다
마지막 한 숟가락의 국물이 씁쓸하다
뚝배기 밑바닥에
숭숭 구멍 뚫린 삭은 사리 같은 뼛조각 뒹굴고
울다 염소
비어 있던 속, 기름기 없던 뱃속으로
푹 삶아진 염소가 갈기갈기 찢겨져 들어왔다
술 몇 잔과 더불어 신선한 공기도 몇 됫박
소독되지 않은 단양 하선암 생수도 몇 컵
해체된 염소 몸이 남긴 갖은 부속물을
소주 반 잔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어
배 속 깊은 곳에 가두었다
밤새 되새김질하는 염소가 운다
울음이 깊을 때마다 몸이 요동쳤다
속 편해지려고 되지도 않은 되새김질을
나도 여러 번, 하고 또 했지만
날카로운 뿔에 받혀 상처가 난 듯 꾸르르륵…
더부룩했다, 밤새 염소가 풀밭이 아닌
융단 같은 위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낮에 몸 부딪는 축구를 해서인지
왼쪽 어깨가 아파 오른쪽으로 돌아눕고
등이 배겨 배를 깔고 돌아누웠던, 아침이
다가오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그 놈이 울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먼동 무렵에
잠 깨어 물안개 피어오른 계곡을 거닐 때
예전에 잠시 그곳에서 뛰놀던 염소가
세차게 방파제를 때리던 태풍 속 파도처럼 요동쳤다
빠르게 달려간 구식 화장실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시끄럽게 괴롭히던 염소를 끄집어냈다
쫘르르 쏴아아아아아… 자신이 놀던 곳으로 염소는
회오리 물살에 묻혀 돌아가려던 것이다
찬바람 불고 찬비 내리는 단양 하선암 계곡
물가에 자리 잡고 앉아 몇몇이 두런거렸던 그날
1963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 스케치> <불법, …체류자>.
현재 도서출판 북인 대표.
나는 다혈질이다
안차애
핏줄기가 내 몸 속을 200km의 속력으로 달려낸다는 것을 알고부터 내 대책 없는 다혈질을 이해하게 되었다. 고개 끄떡여 인정하고 구박하지 않게 되었다. 우심방 지나 좌심실 거쳐 달려 나간 붉은피톨 흰피톨 혈소판들이 아우토반에서 시험 질주하는 최신형 아우디자동차보다 빠른 전력질주로 달리는 것이다. 하루에 내 몸 속을 지구둘레의 두 바퀴 반 거리만큼 쉼 없이 내달리는 피의 고단함을 알고부터 나의 울컥 성질도 다발성 신경질도 너를 향한 대책 없는 펄떡거림도 먹어주게 되었다. 냉각수도 없이 달리고 또 달려낸 핏줄기의 안간힘인 것이다. 나는 이제 세상을 향한 너를 향한 그 뜨거운 폭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더 열혈이 되도록 맹렬이 되도록 쉼 없이 펌프질, 잘 해야겠다.
緣
-정면의 사랑- 안차애
강가 풀 섶에 거미 한 쌍이 산다.
집이 곧 일용할 옷이거나 밥이니 따로 집 한 채씩 짓고 산다.
억새 키 가지런한 곳에 촘촘하게 정면으로 마주보는
정조준 위치의 집.
만 햇살 環視리의 투명한 응시다
사랑은 은근슬쩍 시선을 눙치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한 발 비껴갈 곳 없이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이다
바람도 숨을 죽이는 눈물겨운 집중이다
몸 부비며 치대지는 않는다.
은근슬쩍 등짝에 올라타 무임승차 하지도 않는다.
철저한 독립채산제의 사랑방식이
투명 줄로 한 번 그네 뛰면 그대 있는 곳까지,
먼 바다를 사뿐히 건너게도 한다.
마침내,
안정된 對局 자세로 천년은 버틸 듯한 고요한 몰입!
햇살도 바람도 그 부근에선 가만히 선정에 든다.
약력
씨앗 속의 꽃
김용길
씨앗 속의 꽃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추운 겨울에 아이에게 채송화 씨앗 한 봉지를 사다 주었다
그뿐이었다
봄이 되어도 씨앗은 뿌려지지 않았고
까맣게 잊은 채로 한 여름이 되었다
장맛비 쏟아지는 어느 날
깨알 같은 채송화 씨앗이 방안 가득 뿌려져 있었다
아이가 호기심에서 씨앗 봉투를 뜯은 거였다
씨앗 속의 꽃은커녕 씨앗조차 보여주지 않았다니
나는 얼음에 갇힌 불꽃을 느끼며 자책했다
빗자루로 씨앗을 쓸어 담다 문득 빈 화분을 찾아 씨앗을 심었다
며칠 후 싹이 움트고 아이는 신기해했다
아이는 매일 같이 언제 꽃이 피냐고 성화다
그러나 싹은 제대로 자라나지 못했다
녀석이 어서 빨리 꽃을 보고 싶다고 종일 물을 주어 뿌리째 썩은 거였다
꽃은커녕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다니
나는 아이의 가는 어깨를, 봉투에 남은 씨앗을
뼈처럼 어루만져 주면서 풀무 깊숙이 잠든
불꽃을 길어 올리는 대장장이를 꿈꾸며
내년에는 뜨락에 활짝 꽃피게 해 주마 약속했다
그날 밤 꿈에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처럼
씨앗들이 내 발밑에 와서 속삭였다
푸른 갈기의 바람이 불 켜진 꽃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수화를 듣다
김정미
지루한 장마 끝 반짝 개인 오후
43번 국도로 차를 몰고 나갔다.
불어난 강물을 끼고 돌아가는 굽은 길이
갑자기 나를 가로막는다.
빗물에 씻겨 내린 황토가 아스팔트를 붉게 뒤덮고
철망을 덮씌운 절개지의 흙들이 쏟아질듯 위태롭다.
차를 멈추고 가만히 보니
시뻘건 흙과 바위로 뒤엉킨 그 곳에
꿈틀, 토끼풀이 있다.
털을 한껏 곤두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려니
얘들이 수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해! 조심해!!
나를 짓누른 이 돌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
어젯밤 내린 비에 심통이 났거든.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어?
아무도 봐주지 않는 비탈진 자리에 꼼짝 않고 있자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
토끼풀은 손끝을 바늘처럼 세워
그의 말을 천천히 들려준다.
곤두선 털들은 하나하나 작은 손가락이 되어
내 마음의 수틀에 오색의 실을 잣는다.
나를 걱정하시던 할머니의 축 늘어진 젖처럼
말랑말랑 따스한 정이 만져진다.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세찬 빗방울을 견디느라 힘이 다 빠졌거든.
하지만 네게 말을 전했으니
아무래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길 떠나는 길 위에서
박해영
흘러가는 길 위에서
떠나야 할 길을 바라본다
까마득한 바람
불어왔다 불어가고
돌아보면 죄다 꿈의 언저리
흐트러진 이부자리 곱게 개어
몇 조각 향이라도 사루어 놓고
살갑던 사랑에게도 손을 흔들고
가슴에 아로새긴 단꿈의 무늬까지
탈탈 털어 내려놓고
자꾸만 되짚는 눈길
머뭇거리는 발길 거두어
빈 바랑 걸머지고
홀로 가는 길
기나긴
세월의 한 모퉁이
바람은 가라가라 등을 떠밀고
뿔뿔히 흩어지는 낙엽따라
가벼이 가벼이 떠나가는 길
눈물 아롱지는 길 위에서
사행시 2수
박희진
식영정息影亭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소나무 미치광이, 나는 정철鄭澈의
성산별곡 산실이기도 한 식영정 가서
건물은 안 찍고 그 옆의 수려한
장송長松 사진만 여러 장 찍어왔네.
함양 상림上林에서
옛날 최치원이 조림하였다는 상림을 거닐다.
한가운데 흐르는 맑은 냇물의 즈믄 해 가락,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비껴든 석양빛 좋아
나는 스르릉 심금을 울리며 떠날 줄 모르네.
착 시
배인환
현대문학관에 있는
가산可山의 사진을 보면
어쩐지 프란츠 카프카의 얼굴이 떠오른다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의 얼굴이 영 다른데
어째 비슷하게 보이는가
그 동안 여러 번 보았지만
가산은 가산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리 보인다
동양과 서양이 화합하는 순간인가
나도 나를 모르겠다
판단이 흐려지는 밤이라 그런가
내가 눈이 나빠서인가
아니면 사진이 잘 못 된 것인가
아니면 사진을 잘 못 붙였나
둘 다 산문의 대가이다
고독을 말한다면 카프카 쪽이 한 수 위다
상처로 말한다면 가산 쪽이다
그래서 가산의 사진을 보고
메밀꽃이 아닌
엉뚱하게 푸른 다뉴브 강을 연상한 것이다
싸리 끝대궁에 앉은 잠자리
상 희 구
아니 저 좁아터진 尖端에다
禪房을 열다니!
간댕간댕하면서도
無量法悅의 경지에 든
저것 좀 보게나
빠이빠이
설 태 수
안나 화원 꽃가게 앞.
유모차에 앉은 여자 아이가 뭔가를 말하면
앞에 앉은 노인은 귀를 잔뜩 기울인다.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보면
노인도 하늘을 가리키며 웃는다.
2층집 창문 안에 있는 내게는
그 얘기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다 알아들을 것 같다.
아이가 귀를 기울이기도 하는 그 풍경을
붉은 선인장 꽃, 산세베리아, 풍란, 들꽃들도
다 알아듣는 것 같다.
바람도 없는데 꽃들이 깐닥거리고
잎들이 반짝이는 게 그렇다.
가게에서 나온 아기 엄마가 유모차를 잡는다.
노인은 아이 손을 잡고 빠이빠이 흔든다.
아이도 나머지 한 손을 흔든다.
꽃들도 담쟁이 잎도
빠이빠이.
목소리 한 번 못 듣고
나를 몰라도
빠이빠이 빠이빠이.
본질과 현상
성 찬경
본질과 현상. 이 신성한 울림 앞에서
모두가 모자 벗고 고개 숙인다.
학자는 신음하며 투명 메스로 토막질 한다.
예술가는 황홀한 술에 취해 찬미의 춤을 춘다.
허나 슬기의 극점에서도 신기(神技)의 솜씨로도
신비궁전의 비밀 핵은 못 터뜨린다.
본질은 구심력 구실을 하고 현상은 원심력으로 달려 나가지만
존재의 울에서 둘은 합궁하고 다시 하나다.
침묵하는 호수에 달이 뜬다.
달이 부스러져 가는 빛 비늘이 된다.
수심이 점점 깊어만 간다.
기슭에선 천둥 번개 폭죽놀이다.
5관이 쏘아대는 무지개 화살이 팔방으로 난다.
먼 수평선에 붉은보라 노을이다.
핵으로 쓴 시
손현숙
대학친구들끼리 모여앉아 안주삼아
북한의 핵과 아인슈타인의 핵, 인류 평화와 종말에 대해
옥신각신하며 술 마신다
저 혼자 엉망으로 취한 사진하는 K가
‘핵, 그거 참 좋지!’
남자는 없고 여자만 있는 그거, 그것이 있어서
남자는 늘 허겁지겁 급하고
여자는 파들파들 계속 아름답다고 키들거리며
주제를 아주 딴 곳으로 틀어버린다
놈은 지금 여자의 음핵을 갖고 놀고 있는 거다
여자 몸 깊은 곳에 장치된 버튼 같은 것,
낮게 낮게 떨리다 돌개바람처럼 불붙어 마침내 휘몰아쳐 폭발하는 핵
하긴, 여자가 포연처럼 자욱하게 만개하여 남자를 쌈 싸먹지 않았다면,
이 세상을 낳지 않았다면
인류의 평화고 종말이고 무엇이 있겠는가
남자여! 찝쩍거려라, 건드려라, 문질러라, 터트려라,
숨죽이며 다가와 무릎 꿇어라!
객
윤 종 대
손님이 왔다
똑똑 문을 두드리더니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들어와서는
살살 간지럽히더니 문지르더니 흔들더니
마침내 흰 옷자락을 크게 흩날리면서 막아서는 모든 것을
두드려 열어버리려고 했다
미친 듯 취한 듯 그렇게 한 바탕 놀고는 손님은 사라져 버렸다
희안하게도 놀던 그 자리에 동부가 자라고 꽃이 피고 꼬투리가 맺혔다
정중하게 물어볼 걸 그랬다
어디서 왜 오셨는지 왜 이런 누추한 곳에 오셨는지
어디로 왜 가시는지
동부를 키우려고 왔다가셨나
동부처럼 나를 키우려고 왔다 가셨나
지천명이라고는 하지만
문득 왔다간 손님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울 줄은 몰랐다
이미 어디로 가는 줄을 알고 가버린 뒤의 저 흔적
저 흔적 마저 외면하고 싶도록
<편집후기>
* 이번 달의 초청시인으로는 조현석 시인과 안차애 시인을 모셨습니다. 옥고를 보내주신 두 분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아시아문학 > 시와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1년 3월 정기모임 장면들 (0) | 2011.04.01 |
---|---|
2011년 3월 좋은시낭송회 (0) | 2011.04.01 |
[스크랩] 2010년도 신춘문예당선작 모음 (0) | 2010.01.10 |
[스크랩] 이기형 시인의 신간시집 (0) | 2009.01.08 |
[스크랩] 2009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0) | 2009.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