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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

우또라 2007. 10. 23. 10:35
창작 활동 시작 (1941~ 1969)
‘팔레스타인 민족 시인’으로 불리는 마흐무디 다르위시는 1941년 팔레스타인 악카(Akka) 근방의 정취 있는 마을 바르와(Barweh)에서 태어나, 수니파 무슬림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1948년 다르위시가 7살 때, 가족이 살던 마을에 이스라엘 군대가 들어와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대량 학살함에 따라 그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레바논으로 피신을 가야 했다. 다음해 가족이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곳은 이미 유대인 거주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아랍인 거주지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고향 상실’의 경험은 다르위시에게 깊은 상처로 각인되었는데, 그 상처는 오늘까지도 아물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이후 그는 20 군데가 넘는 곳을 옮겨다니면서 거처를 마련해도 진정한 의미에서 ‘집’이라 부를 곳이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자신들의 땅에 살면서도 남의 지배와 억압을 받아야 했던 상황에서, 청년 시인 다르위시는 시를 무기로 삼아 고통스런 부르짖음과 반항적인 외침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압제가 커질수록 아랍인이라는 자각은 더욱 커져갔다. 다르위시는 아랍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이스라엘 앞에서 숨김없이 당당하게 외쳐야한다고 생각했다. 1964년 「올리브 잎새」에 실린 「신분증」이란 시에서 그는 땅을 잃었기에 정체성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더 이상 참기 힘든 분노를 표출한다. 시의 각 연마다 반복되는 “적으시오!/ 나는 아랍인이라고”라는 말은 이스라엘 당국자에게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아랍인들은 가난해도 자기 삶에 떳떳함을 잃지 않고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을 갖는다. 다르위시의 호소력 짙은 시는 팔레스타인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올리브 잎새」외에도 「밤의 끝」(1967), 「새들 갈릴리에 지다」(1970)와 같은 시집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목소리에 담긴 진정어린 목소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1969년 ? 摸@㎧척?아시아ㆍ아프리카 작가회의에서 주는 로터스 상(Lotus Prize)을 수상했다.
다르위스는 이집트 양대 일간지 중의 하나인 「알 아흐람(Al-Ahram)」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주간지 ≪알 아흐람≫(2002년 4월 11~17일자) 기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더이상 ‘희생제물’ 같은 비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들이 이제 메타포의 바깥에서, 실제 그들이 태어난 현실적인 장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조국을 신화의 육중한 무게로부터, 야만적인 점령으로부터, 파괴만을 약속하는 평화의 신기루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다르위시는 말한다.
다르위시의 정치 활동과 창작 활동은 시간이 갈수록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로터스 상(Lotus Prize)(1969) 수상 이후에도 1982년 유네스코에서 수여하는 아비센나(Ibn Sina) 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에는 레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예술문학 훈장(The Knight of Order of Art and Letters)(1993)을 수여받았으며, 2001년에는 상상력과 연구와 표현의 자유에 기여한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라난 상(The Lannan Foundation Prize)을 수상했고, 2004년 문화와 발전을 위한 프린스 클라우스 기금에서 주는 프린스 클라우스 상(The Prince Claus Prize)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는 골든 레스 상(Golden Wreath Award)을 수상했다. 이러한 수상 경력 외에도 1997년에는 ‘마흐무드 다르위시’를 제목으로 한 다큐멘타리가 프랑스 TV에서 제작되기도 하였다.
다르위시는 이제까지 대략 30권 가량의 시집과 산문집을 출판했고, 그것은 35개 국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다르위시는 자신의 시가 ‘저항시’로만 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억압과 압제의 문제가 다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인권과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억압 세력은 아직도 세계 도처에 존재한다. 다르위시는 자신의 시가 이런 인류 전체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시로 감상되기를 원한다.




1954년 바그다드 출생. 바그다드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 졸업했다. 첫 번째 소설 [파파 싸르트르]가 베이루트에서 2001년에 출간되었다. 이 소설로 바그다드에서 국가상과 튀니지에서 주는 아불 카심 알 샤비 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바그다드를 떠나 리비알로 건너갔다. 거기서 두 번째 소설 [대상(隊商)의 발자욱]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세 번째 소설 [가족의 겨울]로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주는 문학창조 상을 수상했다. 한편 [벨벳과 크림의 범죄]라는 시집도 있다. 그는 아랍의 신문, 잡지 등에 예술, 정치, 철학에 대한 글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 가장 촉망받는 이라크 작가로 대접받고 있다.

셀리나 호싸인은 방글라데시의 가장 유명한 여성 작가 중 한 명으로, 지금까지 21편의 장편소설, 일곱 권의 단편집, 네 권의 산문집, 네 권의 아동 문학집 등을 펴냈다. 1972년 「만조(The High Tide)」로 데뷔한 이래 어언 30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을 집필해왔다. 그녀의 작품들은 압제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에 대한 일관된 천착을 바탕으로, 현대의 사회적, 정치적 위기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녀는 소설 이외의 다른 글들, 예술이나 사회문제, 정부 비판, 정치적 주제들에 대한 글도 쓰곤 하는데, 그녀 글의 공통된 특징은 독자에게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인도의 지방어와 불어, 노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으며, 방글라 아카데미상(1980), 알라올 푸라시카르상(1981), 필립스 문학상(1994), 알라카타 문학상(1994)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1994-5년에는 장편소설 『경건한 저녁(The Pious Evening)』으로 포드 장학기금을 받았다. 그녀의 소설들은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대학에서 교재로 읽히고 있으? ? 그녀의 작품 중 두 개가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그녀는 1970년에 수도인 다카(Dhaka)에 있는 방글라 아카데미에 보조 연구원으로 소속된 이래 아카데미 협회장을 맡아 방글라데시 문학 발전과 홍보를 위해 활발한 대내외 활동을 하다가, 지난 2004년 협회에서 은퇴한 뒤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마드 사이드는 여러 편의 소설과 시, 수필, 희곡을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문학집을 발표하는 등 문학 장르 전반에 걸쳐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였다. 「살리나(Salina)」는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읽혔을 뿐만 아니라 문학성이 높은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전후의 싱가포르 슬럼을 무대로 한 작품인데, 말레이시아 최초로 국제 수준에 이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말레이시아 전후 문학 이후 구시대와 신시대 문학 사이에서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살리나」는 말레이시아 문학 필독서로 확고히 자리 잡은 작품이다. ‘살리나’의 작가라고 불리는 사이드는 1976년에 문학 개척자상을 수상하였고, 1985년에는 말레이시아의 계관시인(桂冠詩人)이라는 영예를 얻었으며, 1993년에는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문학상(ASEAN Award in Litrature)을 수상하는 등 말레이시아 대표 작가로 꼽히고 있다. 2007년 여름에는 쿠알라 룸푸르에서 사마드 사이드의 특별 전시회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사이드가 펜으로 그린 스케치들과 친필 기록이 전시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까지 사마드는 여러 편의 소설과 시집, 어린이 도서, 희곡 등을 발표하면서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문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부인 살미 만자(Salmi Manja)도 호평 받는 시인이다.



1947년 필리핀에서 출생한 알프레드 유쏜은 시인, 소설가, 비평가, 편집자, 다큐멘터리 감독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주로 영어로 글을 쓰며 시와 소설, 희곡, 아동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총 22권의 책을 집필했다. ‘크립(Krip)’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그는, 평범한 언어 조합을 극도로 거부하는 ‘변형시키는 힘’을 가진 시어와 포스트모던적인 서사로 ‘필리핀의 마르케스’, ‘필리핀의 월레스 스티븐슨’ 이라고 불린다. 현재 그는 필리핀 작가협회 회장을 지내며, 미국 하와이 대학교에서 발간하는 잡지《MANOA: A Pacific Journal of International Writing》의 필리핀 지부 편집장을 맡고 있고, 《필리핀 스타(Philippine Star)》지와 《필리핀 포스트 매거진(Philippine Post Magazine)》에 매주 문학과 문화와 관련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닐라에 있는 아테네오 마닐라 대학교(Ateneo de Manila University)에서 시와 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장이머우의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잘 알려진 모옌(莫言)은 80년대 중반 심근파(尋根派) 소설가로서, 그리고 90년대 초반에는 신역사소설가로서 중국당대소설의 변화와 긴장의 중심축에 위치하고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고향에서 자신의 육신과 영혼이 성장해온 근원을 발견하였고, 고향의 역사와 현실을 소재로 소설을 창작해 왔다.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감정, 생존양태, 그리고 억압당하고 왜곡된 인간의 본능을 구체적이고 핍진한 필치로 다루는 한편, 의화단 사건, 중일전쟁 등 과거 그 땅을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새로운 언어로 묘사해 내었다. 정치·경제적 혼란의 와중에 농공병(工農兵)으로 십대와 이십대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습작기에 개혁개방을 맞아 서구의 다양한 작품과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정신적인 면에서는 민족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예술 기교면에서는 서구 현대사조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는 평가를 모옌은 받아 왔다.
모옌은 지금까지 10편의 장편, 24편의 중편, 7-80편의 단편을 썼는데, 중단편소설을 묶은 작품집으로 「투명한 홍당무」, 「폭발」, 「붉은 수수 가족」,「점점 익살스러운 아저씨」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천당 마늘종의 노래」, 「십삼보」, 「사십일포」, 「술의 나라」, 「풀 먹는 가족」, 「풍만한 젖가슴 살찐 엉덩이」, 「탄샹싱」 등이 있다. 그 외에 「모옌문집」 5권이 출간되어 있다.

모옌은 “말이 없다(莫言)”이라는 필명과는 달리 1981년 처녀작을 발표한 뒤 26년간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스스로도 말한 바 있듯이 그는 문장 하나까지 지나치게 공을 들이기보다는 격정적으로 창작욕을 분출하는 작가이다. 그 사이 중국 전체로 볼 때, 개혁개방 이후 진행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으로 인해 온갖 유파의 작가와 작품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언어의 물결이 쏟아져 나와도 ‘말이 없음’만 한 게 없었다(千言萬語, 何若莫言).


약력
류전윈은 1958년 5월 하남성(河南省) 옌진현(延津見)에서 출생했다. 1973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습작을 시작했으며, 1978년에 제대하였다. 제대 이후 잠깐 동안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했으며, 문혁 동안 중단되었던 대학입시가 부활한 이듬해인 1978년 가을 북경대 중문과에 입학한다. 1982년 대학 졸업 후 《농민일보》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문화부 주임으로 재직하고 있다. 1988년에서 1991년까지 위화(余華), 모옌(莫言) 등과 함께 북경사범대학 루쉰문학원 창작연구생반에서 수학하여 문예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 북경시 청년연합회(靑聯) 위원, 일급작가(一級作家)이며, ‘루쉰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2년부터 창작을 시작했으며, 1987년 《인민문학》에 단편소설 「탑마을」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소설로 그는 1987-88년 전국우수단편소설상, 1987년 《소설선간》우수단편소설상, 1987년 《인민문학》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전국 드라마 “비천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 발표한 「신병훈련」또한 좋은 평가를 받아, 제3회 《소설월보》 우수중편소설 “백화상”과 제2회 청년문학 창작성취상을 수상한다. 이후 「우두머리」(1988), 「직장」(1988), 「관직」(1989), 「닭털 같은 나날」(1990), 「관리들 만세」(1991), 「1942년을 돌아보다」(1993), 「뉴스」(1994) 등 우수한 중편을 잇달아 발표하여 “중편에 강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대표작 「닭털 같은 나날」은 그의 소설 특유의 블랙 유머와 실존주의적 색채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 《중화독서보》에 의해 “20세기 100대 세계명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장편으로는 「고향의 국화」(1991), 「고향의 옛 이야기」(1993), 「고향의 꽃송이」(1998), 「온통 헛소리」(2002), 「핸드폰」(2003) 등이 있으며, 「닭털 같은 나날」, 「1942년을 돌아보다」, 「핸드폰」 등 다수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거나 제작 예정이다. 또한 중국 최초의 “작가영화”라고 평가되는 《내 이름은 유약진》(감독: 마리원)에서는 직접 제작, 시나리오, 연기 등에 참여하였으며, 올 12월 상영예정으로 후반작업 중에 있다.


1953년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북쪽에 위치한 지역 바다크샨(Badakhshan)에서 태어난 파타우 나데리는 “어떤 형태로서든지 시는 어린 시절부터 내 삶의 일부였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소련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범하던 당시 유명 시인으로 알려져 있던 파타우 나데리는 1984년 이만 명이 넘는 지식인들과 함께 카불 외곽에 위치한 악명 높은 감옥 풀-에-챠르키(Pul-e-Charki)에 투옥된다. 그는 담뱃갑 속에 끼워진 은박종이에 시를 썼고 자신을 보러 온 아내에게 그것을 은밀히 건네주었다. 이런 식으로 감옥에 갇힌 저항 시는 감옥의 높은 벽을 넘어 세상을 향해 탈주하게 된다. 5년 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 그는 석방된다.
페르시아어로 쓰인 그의 시들은 정부의 부정부패 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는 ‘정치적인 시’와 ‘정치화된 시’를 구분한다. 정치적인 시는 헤게모니를 장악한 정치와 정치적 구조에 대한 반작용에서 시작되는 반면, 정치화된 시는 정치적 환경의 영향 하에서 시의 외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식을 갖춘 시인은 정치적인 시를 쓸 뿐 절대로 정치를 위한 시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화된 시를 쓰는 것이 작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시를 조롱하는 행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작가 협회(Afganistan Writers Association)의 일원이 되었으나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모임은 해체되고 작가들은 국외로 망명한다. 그는 1997년 고국을 떠나 망명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파키스탄 BBC 페르시안 부서를 담당하는 PD가 되었고, 그곳에서 5년을 머물렀다. 2002년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이 탈레반을 몰아냈을 때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문학적 자유를 지향하는 국제 조직인 아프간 펜 협회(Afghan PEN Association)의 회장이 되어 조직을 운영한다.
저항 문학을 위해 저항하던 그는, 자신이 시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예술적 성취는 황폐화된 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작은 노력이 시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 믿게 된다. 시의 밖에서 움직이는 시, 시인은 그 자체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시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살와 바크르는 현재 카이로 근교에 살고 있는 이집트의 여성 작가이다. 그녀는 1949년 이집트의 마타리야(Matariyya)에서 유복녀(遺腹女)로 태어났다. 부친은 철도회사의 직원이었다. 과부이며 교육받지 못한 어머니의 사연은 살와 바르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의 얘기는 그런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관심을 반영한다. 그녀는 1972년 아인샴스 대학교(Ayn Shams University)에서 경영학 학사를 취득했고, 4년 후에는 극예술 비평 분야에서 학위를 하나 더 얻었으며, 대학원에 진학하여 역사와 문학비평을 공부하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정치경찰에게 극좌파로 분류되어 아무 때나 구금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 정부의 식량성(省) 배급 검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 후 아랍어 간행물 몇 군데에서 영화와 연극 비평가로 일하다가 1986년 이집트로 귀국하여 창작활동에 전념해오고 있다. 살와 바크르는 1986년 자비로 첫 단편집을 펴낸 이후,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에 전 아랍 세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성작가의 한 사람으로 부상하였다. 1987년에 발표된 중편 「아티아의 사당(The Shrine of Atia)」, 1991년에 나온 첫 장편소설 「황금마차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다(The Golden wagon doesn't go to Heaven)」가 특별히 주목받는 작품이다.

살와 바크르는 2001년부터 카이로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교(American university)에서 객원교수로 있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남성과 여성 모두가 해방되기를 꿈꾸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심화시키는 창의적인 소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소날라 이브러힘(Sonallah Ibrahim)은 프랑스를 제외한 서구 세계에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다. 그러나 아랍 세계에서 그의 이름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그는 가장 널리 알려진 “식스티 제너레이션(sixties Generation)” 세대의 작가인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아랍세계와 이집트의 비민주성과 정치적 타락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비판하며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그것들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또한 그는 문화ㆍ경제적 제국주의, 세계화의 열풍이 아랍세계에 미치는 영향들을 탐구하고 권력에 대항하는 지식인의 입장에서 재현의 근대적 체계와 권력의 담화, 지식의 생산에 대해 고민한다.
소날라 이브러힘은 1959년 이집트 낫세르 대통령이 좌익분자 처벌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그럴 소지가 있다는 심증만으로 지식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투옥하던 시기에 7년형의 강제 노역을 언도받았다가 1964년 일반 사면으로 풀려난 인물이다. 강제 노동과 육체적 고문이 반복적으로 교차되던 오 년 반 동안의 수감 생활은 그에게 평생 떨쳐내지 못할 트라우마로 남게 되지만 그는 긍정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 시기의 경험을 관조한다.
극좌파로서의 정치적인 활동,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이어지던 신문기자 생활은 작가로서의 각성 이후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 소설과 다양한 소설기법의 실험으로 이어진다. 실천적인 참여문학을 지향하면서도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놓치지 않는 그의 작품 세계는 현실 이라는 허구와 소설적 허구가 드러내는 현실을 교묘한 방식으로 폭로한다. “문학은 어느 것이건, 창조적인 본질 면에서 문학가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사회와 세계 속에서 살며 겪게 되는 깊은 인간적 고뇌를 미적으로 표현하는 형식이다. 또한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언어와 문체의 미적 창조를 통해 쏟아내는 것이다”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Saleh는 1976년 대학 입학자격시험을 마친 후에 4년간 의학을 공부하다 포기하고 아랍세계, 특히 요르단에서 저널리스트로 근무했다. 동시에 그는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석사 논문으로 “네이폴(Naipaul)의 기행문학에 나타난 이슬람: 포스트 콜로니알 연구”를 썼다. 그는 아랍의 무학과 시에 대해 아랍어로 많은 책을 출간했다.
1997년에 그는 팔레스타인 문학비평상을 받았고, 2003년에는 영문도서를 아랍어로 번역한 작업과 비평에 대한 문학적 기여를 평가받아 Ghalib-Halasa-Preis 상을 받았다. 그는 현재까지 일간지 “Ad-Dustour”의 편집자이며, 요르단 문학비평 협회의 회장이다.

Fasal Darraj
Zuleikha Aburisha (B-Class)
Ahmad Y. Majdoubeh
Abdo Wazen
Kapil Kapoor
Makarand Paranj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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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 Hardini (예명 NH D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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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matsu Wah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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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aa Jav
이집트의 소설가이자 의사, 여성운동가.
나왈 엘 싸다위(Nawal El Saadawi)는 이집트의 소설가이자, 수필가, 외과의사로서, 특히 여성운동적 시각에서 쓴 그녀의 소설들은 아랍 소설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의 중심 주제는 억압받는 여성과 여성의 자기표현에 대한 욕망이다. 처음에는 논픽션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책들은 이집트와 몇몇 아랍 국가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나왈 엘 싸다위는 1931년 나일 삼각주 지대에 있는 카프르 타흘라(Kafr Tahla)에서 태어났다. 1977년 그녀는 여성과 심리적 갈등에 대한 논픽션 [이브의 숨겨진 얼굴](The Hidden Face of Eve)을 펴낸다. 레바논에서 펴낸 영어 번역판은 여섯 살 때 받은 할례에 대한 저자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교도소의 회상]은 런던에서 출판된다. 1987년 장편소설 [이맘의 몰락]을 카이로에서 펴낸 뒤, 그녀는 근본주의 종교집단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도크의 나왈 엘 싸다위](Nawal Saadawi in the Dock, 1993)라는 책에서 그녀는 이교도로 처분이 내려지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1981년 싸다위는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대통령의 일당독재를 비판하다가 체포되어 ‘수치로부터 가치를 지키는 법’을 위반한 혐의로 두 달 동안 카나티르(Qanatir) 여자교도소에 구금된다. 교도소는 그녀에게 이미 익숙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1970년대에 그곳 재소자들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사다트가 죽자 그녀는 석방되었다. 1982년 그녀는 아랍여성연대(Arab Women's Solidarity Association)를 결성하는데, 그것은 1991년에 금지된다.
그녀는 문학원상(High Council of Literature Award, 1974), 프랑스-아랍 친선 문학상(Literary Franco- Arab Friendship award, 1982), 구브란문학상(Literary Award of Gubran, 1988), 리비아공화국 일등훈장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초기 저서들은 1950년부터 출판되었지만, 소설가로는 1958년에 펴낸 자전적 소설 [여자교도소의 회상]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공공연하게 족장제도를 비판하고, 여성 할례, 낙태, 섹슈얼리티, 아동학대, 다양한 형태의 여성 억압과 같은 금기시된 문제들을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페미니스트 독자들은 그녀의 소설을 두고 주제와 전망이 반복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싸다위 소설의 특징은 그녀 자신의 의학과 자전적 세목들, 그리고 사회적 병증에 대한 그녀 자신의 지식과 같은 논픽션 요소들을 픽션에 섞어 넣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중동지역에서 발흥한 위대한 세 종교의 전제적 측면들을 공공연히 비난했으며, 고대 이집트가 여성이 가장인 사회였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2004년 그녀는 유럽의회로부터 남북상(North-South Prize)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는 아프리카작가연맹상을 수상했다. 2005년 그녀는 이집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녀의 저서들은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주요 저서』
단편집 - [나는 사랑을 배웠다](I Learned Love, 1957)
- [진실의 순간](A Moment of Truth, 1959)
- [실과 벽](The Thread and the Wall, 1972)
- [천국에도 그녀의 자리는 없다](She Has No Place in Paradise, 1979)
- [전직 장관의 죽음](Death of an Ex-Minister, 1980)
장편소설 - [한 여성 의사의 회상](Memoirs of a Woman Doctor, 1958)
- [부재하는 인간](The Absent one, 1969)
- [하나인 두 여자](Two Women in one, 1971)
- [포인트제로의 여성](Woman at Point Zero, 1979)
- [신은 나일강가에서 죽다](God Dies by the Nile, 1984)
- [이맘의 몰락](The Fall of the Imam, 1987)
- [석유제국의 사랑](Love in the Kingdom of Oil, 1993)
논픽션 - [여성과 성](Women and Sex, 1972)
- [남자와 성](Men and Sex, 1973)
- [이브의 숨은 얼굴](The Hidden Face of Eve: Women in the Arab World, 1977)
- [여자교도소의 회상](Memoirs from the Women's Prison, 1984)
자서전 - [화염 속을 걷다](Walking Through Fire: A Life of Nawal El Saadawi, 2002)
나이지리아의 시인이자 비평가.
1947년 나이지리아의 이케레-에키티(Ikere-Ekiti)에서 태어난 올루와 니이 오순다레(Oluwa Niyi Osundare)는 저명한 시인이자 극작가, 문학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바단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의 리즈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캐나다의 요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바단대학의 교수를 거쳐 1997년에는 뉴올리안즈대학의 영문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언제나 자유언론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으며, “말하는 것이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말의 힘을 강력히 신봉했다. 오순다레는 사회참여 예술에 관여한 것으로 유명한데, 나이지리아의 대통령 올루세군 오바산조(Olusegun Obasanjo)에게 종종 공개 편지를 보내 노골적으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오순다레는 아프리카 시인이라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아프리카에서 여러 나라가 처한 상황에 대해 침묵할 수는 없다. 아침에 눈을 떠서 마실 물이 없을 때, 밤이고 낮이고 식탁에 밥이 없고, 아픈데도 병원이 없고, 영혼에 평화가 없다는 대중의 분노를 맞닥뜨릴 때, 온갖 데서 보게 되는 지배자의 초상이 바로 손에 총을 들고 있는 독재자의 그것일 때, 게다가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당신이 속한 대륙을 주변부로 할당한 세상, 즉 당신의 피부색 때문에 당신이 어디를 가든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렇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상황을 변화시킬 시도로써 이것에 대해 쓸 수밖에 다른 길은 없지 않겠는가.”
독재자 아바차(Abacha) 장군 치하(1993-1998)에서, 오순다레는 나이지리아의 전국지에 정권을 비판하고 나이지리아 국민들의 생활에 대해 언급하는 글을 주기적으로 기고했다. 그 결과로 그는 비밀경찰의 사찰을 받았으며, 시에 대해서도 설명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나이지리아의 비밀기구들이 매우 ‘지적이고’ 매우 ‘문학적인’ 조직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바단대학의 내 학생들 중 두 명은 프락치가 되었다. 몇몇은 내 수업을 도청하려고 찾아왔다. 내가 외국에 나가 있을 때에도 누군가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추적을 하곤 했다. 집에 있을 때, 내 편지는 종종 사라지곤 했다.”
오순다레는 "아프리카의 인권에 대한 특별한 기여뿐만 아니라 문학적 창조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기려 받은 폰론/니콜 상(the Fonlon/Nichols Award)을 비롯해서 영연방문학상(Commonwealth Poetry Prize), 노마상(Noma Award)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장터의 노래](Songs from the Marketplace, 1983), [마을의 목소리](Village Voices, 1984), [땅의 눈](The Eye of the Earth, 1986), [달노래](Moonsongs, 1988), [계절노래](Songs of the Season, 1990), [조롱자들을 기다리며](Waiting Laughters, 1990), [시 선집](Selected Poems, 1992), [말은 달걀이다](The Word is an Egg, 2002) 등의 시집과 아프리카 문학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집 [베틀의 실](Thread in the Loom: Essays on African Literature and Culture, 2002) 등이 있다. 2004년에는 [땅의 눈]이 나이리아에서 지난 25년간 가장 뛰어난 책 25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 문어체 시의 대중화를 위한 선두주자로서 [선데이트리뷴](Sunday Tribune)에 매주 시적인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시는 불어, 이태리어, 슬로베니아어, 체코어, 화란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현재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영문학을 강의하는 교수인 그는 인권과 사회 정의 및 환경 문제에 관한 탁월한 운동가이기도 하다.
루이스 응코시(Lewis Nkosi)는 1936년에 태어난 남아공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그는 더반 ‘안가 레이스 나탈 (Ilanga lase Natal)’와 요한네스버그 ‘드럼(Drum)’잡지사에서 여러 해 일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그의 작품은 공산주의와 출판 및 예능 진압의 엄격한 출판 규제에 직면하게 되자, 1961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 이후 런던 ‘뉴 아프리칸(The New African)’과 미국‘넷(NET)’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그는 아프리카 잠비아(Zambia)대학과 미국의 아이오밍(Wyoming),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교( California (Irvine)) 그리고 유럽 폴란드 워소우 대학교(Warsaw, Poland) 에서 문학교수로 있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정치와 관계와 성에 주제를 다뤘으며, 재미있게도 버스 린드포스의 ‘치누와 아체베와의 대화(Conversations With Chinua Achebe)’제 3장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최고 저자인 치누와 아체베(Chinua Achebe) 및 월레 소잉카(Wole Soyinka)와 콤비가 되었다.
『주요 저서』
수필집 - 고국과 망명(Home and Exile), 롱맨(Longmans), 1965
- 고국과 망명 외(Home and exile and other selections), 롱맨(Longman), 1983
- 심장이식 : 남아공평론(The Transplanted Heart: Essays on South Africa), 1975
- 과업과 겉치레 :아프리카 문학의 주제와 문체 (Tasks and Masks: Themes and Styles of African Literature), 롱맨(Longman), 1981
- 폭행의 리듬(The Rhythm of Violence), 1964
- 흑인 정신병의사(The Black Psychiatrist), 2001
소설 - 새의 교미(Mating Birds), 콘스터블(Constable), 1986 [맥밀란 팬 상 수상(The Macmillan Pen prize)]
- 비밀조직(Underground People), 카엘라(Kwela), 2002[1994년 네덜란드 첫 출판]
- 만델라의 자아(Mandela's Ego), 2006





바바라 음디무루쿤도 쿠루루는 부룬디 작가이며, 1950년에 태어났다. 언어학, 기호학, 커뮤니케이션 박사이기도 한 그녀는 프랑스의 프랑쉬-꽁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룬디 대학에서 강연하고, 부줌부라 뤼미에르 대학을 비롯한 부룬디의 여러 대학에서 강연하고 있다. 그녀는 커뮤니케이션과 전략을 주제로 ISCAM(군 장교 고등 사범학교)에서 부룬디 사관생도들을 교육시켰다. 1990년, 그녀는 부룬디 축시의 저자이자 번역가로서 ACCT(문화기술협력센터)에서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컨설턴트로서, 그녀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여러 컨퍼런스에 참석하였다.



베로니크 타주(Veronique Tadjo)는 1955년 파리 태생으로 아비잔(Abidjan)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그녀는 가족과 종종 여행을 다녔다. 코트니부아르 출신인 아버지는 은퇴 전까지 고위 공무원 이였고, 프랑스인 어머니는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그녀는 아프리카-미국 학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아프리카ㆍ유럽ㆍ미국ㆍ라틴아메리카 등 광범위하게 여행하였다. 그녀는 수년 동안 코트니부아르에 있는 아비잔대학(University of Abidjan)의 교수였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아이들을 위한 화보 혹은 다른 주제의 화보를 그리고, 집필하는 연구실을 경영했다. 그녀의 소설 ‘여왕 포쿠오 (Reine Pokou [Queen Pokou])’는 2005년 “Grand Prix Litteraire d'Afrique Noire”에서 일류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영국과 케냐에서 지냈으며, 지금은(2007년) 남아프리카에서 산다.
『출판물』
- 홍토(Laterite). 파리:하티어(Paris: Hatier),1994(96p),ISBN 2 218 06896 6. Poetry
- 최단거리로(A vol d'oiseau [As the crow flies]). 파리: 나탄(Paris: Nathan), 1986. (96p.). ISBN 209 169020 1. Novel. (1992년 : L'Harmattan사에서 개정증보판 발행).



1994년 르완다 대량학살 생존자. 50세인 요란데 무카가사나(Yolande Mukagasana)는 그곳에서 남편과 형제, 자매 그리고 세 아이까지 잃었다. 대량학살의 회고와 그녀의 국가의 재건을 원조하기위해 ‘죽음은 나를 원하지 않는다.(La mort ne veut pas de moi )’,‘앎을 두려워하지 마라.(N'aie pas peur de savoir)’,‘침묵의 상처(Les blessures du silence)’ 책을 썼다.
그녀는 대량학살 때 고아가 됐던 세 조카딸들을 입양해서 새 가족을 꾸렸으며, 르완다에서 다시 새 집을 짓고 20명의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그녀는 국가 재건 원조 및 대량학살 추모 기금인 ‘Nyamirambo Point d'Appui협회’ 창건자이다. 르완다 사회기구 갱생을 보조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이 단체는 르완다 정부에서 NGO(Nyamirambo Point d'Appui)로 불리며, 브뤼셀(Brussels)에 협회 본사가 있다.
요란데 무카가사나(Yolande Mukagasana)는 분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교육에 힘썼으며 학교와 협회에서 연설을 하였다.
1998년 이탈리아 알렉산더 렌거 창건 기념 상(Alexander Langer Foundation Testimonial Award), 1999년 독일 아이에나 유럽대학(European College of the Iena University)이 주체한 국제 인권 및 국가 협정상(International Understanding Between Nations and for Human Rights), 2003년 로마 아치비오 디롤모 협회(Archivio Disarmo Association of Rome)가 주체한 골든도브 평화상(The Peace Golden Dove Award), 같은 해 브뤼셀에 21세기 여성상(Woman of the 21 st Century for Resistance Award)과 파리의 유니세코(UNESCO)주체 명예평화교육상(Honourable Mention for Peace Education )등 이외 많은 수상을 하였다. 그녀는 ‘94년 르완다(Rwanda 94)’ 극의 공동작가로서 배역도 맡고 있다.
『출판물』
- 죽음은 나를 원하지 않는다.(La mort ne veut pas de moi), editions Fixot, 1997
- 앎을 두려워하지 마라(N'ai pas peur de savoir), Robert Laffont, 1999
- 침묵의 상처(Les blessures du silence), Actes Sud, 2001
남아공의 작가.
제임스 메튜(James Matthews)는 1929년 5월 남아공의 케이프 6지구(District Six in Cape Town)에서 태어났다. 노동자계급인 부모님을 두어 7학년을 마치고 나서부터 신문배달부, 사무실 보조, 서기, 전화교환수 등 닥치는 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매력적인 글과 예술적 표현이 그의 존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946년 그의 나이 17세때 첫 작품을 출간한 뒤 곧 신문기자로 첫발을 내딛는다. 그 후 그는 [골든 시티 포스트](Golden City Post), [케이프 타임즈](The Cape Times), [드럼](Drum), [무슬림 뉴스](Muslim News) 등 많은 신문사에서 일한다. 문학적으로 볼 때, 그는 단편소설을 통해 케이프타운의 노동자계급 세계 및 흑인 거주 지역, 그리고 강제적으로 흑인을 쫓아낸 케이프 아파트 등의 딜레마를 알렸다. 시를 통해서는 흑인 말살의 흉계에 자기의존 관념을 확산시키는 흑인 의식 철학(Black Consciousness philosophy)의 선도자가 된다. 그의 첫 출판물은 1972년 글레이스 토마스(Gladys Thomas)와 공동 저작한 [분노의 울부짖음](Cry Rage)이라는 시 모음집으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정부에서 금! 서로 지정한다. 그의 이후 출판물들도 대부분 금서로 지정되며, 마침내 1976년 빅터 벌스터 감옥(Victor Verster prison) 독방에 몇 개월 간 구금되기도 한다. 그는 무려 23년간 계속해서 여권 발급이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때 그는 국가의 억압과 온갖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사상가이자 작가, 그리고 문화적 노동자의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정치적인 글들은 인종차별정책을 고수하는 정부 하 남아프리카인들을 그렸고, 힘 있고 자신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이 날카로운 감각으로 그는 훗날 케이프타운에 최초의 흑인 갤러리를 지었고, <흑인문학과 예술, 문화>(Black Literature, Arts &Culture)의 두문자를 따서 블랙(BLAC)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의 시와 단편과 소설이 전 세계적으로 읽혀지긴 했지만 세계적인 시인이자 작가로서 자리매김 하는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는 7개의 시집과 한 권의 단편집 모음과 장편소설을 썼다. 그의 작품은 거의 전부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세계적으로 널리 번역되고 출판되었다. 그 결과 생계수단을 박탈당한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예술 갤러! 리와 출판사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에 의해 결국 ? ??닫게 된다. 그는 1987년 설립된 남아공 작가협회(the Congress of South African Writers)의 지부장으로 당선되었으며, 독일의 러트(Lehrte)와 닌부르크(Nienburg) 시로부터 자유민 특권을 얻었다. 동시에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작가 명예연구원으로 선정되었으며, 독일의 여러 대학교에서 연구 및 교수활동을 하였다. 그는 1978년 와자 아스치카 상(Woza Afrika Award)의 수상자이며, 1979년 미국 시카고에서 흑인예술가로서 카와자(Kwaza) 서작자 명단에 올랐다.
2000년 그는 남아공에서 리얼리티스(Realities) 출판사를 설립하였다. 그는 여전히 케이프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출판물』
- 분노의 울부짖음(Cry Rage), 1972, 스프로 카스 출판사(Spro-Cas Publications)
- 흑인의 외침(Black Voices Shout,) 1974
- BLAC 미트볼 좀 건네주세요(BLACPass me a Meatball), 존스(Jones), 1977
- BLAC 꿈꿀 시간은 없다 (BLACNo Time for Dreams), 1977
- BLAC 썩은 샘과 다른 환희(BLACPoisoned Wells and Other Delights), 1991
- 흑인의 불꽃과 꽃 (BLACFlames and Flowers), 2000, Realities
- 감옥에서의 시(Poems from a Prison Cell), 2002, Realities
- 공원과 다른 이야기들(The Park and other Stories), 1983, 레연 출판사(Ravan Press) (단편)
- 파티는 끝났다.(The Party is Over), 1997, 카웰라 출판사(Kwela) (소설)
탄자니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학자.
유프레이즈 케질라하비(Euphrase Kezilahabi)는 1944년 탄자니아 빅토리아호수 근처 우케레웨(Ukerewe)에서 태어났다. 그는 작가이자 시인이며 학자로서, 사이드 아흐메드 모하메드(Said Ahmed Mohamed)와 나란히 탄자니아에서 가장 저명한 현대 스와힐리어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1970년 다르 에스 살람(Dar es salaam)의 동아프리카대학을 졸업했고, 다르 에스 살람 대학에서 스와힐리어 문학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에는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아프리카 언어와 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1985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보츠와나의 한 대학에서 아프리카 언어학부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현대 스와힐리어 미학의 양면성](Aesthetic Ambivalence in Modern Swahili), [아프리카 소설에 나타나는 영웅의 개념](The Concept of the Hero in African Fiction) 등과 같은 주제를 주로 다룬다.
작품을 쓸 때, 그는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논문 이외에 주요 작품으로는 [미궁(迷宮)](Mzingile, 1991), [로사 미스티카](Rosa Mistika, 1971), [감바 라 은요카](Gamba la Nyoka, 1978), [나고나](Nagona, 1990) 등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시집 [카리부 음다니](Karibu Ndani, 1988), [키쵸미](Kichomi, 1974) 등이 있으며, 단편도 여러 편 발표했다. 탄자니아 정부를 대담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풍자 희곡도 쓴 바 있다. 그의 시는 전통적 스와힐리어 운문 형식을 거부하면서 미학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그의 소설들은 탄자니아에서 널리 읽히는 가운데 동아프리카 중고등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인다.
그의 소설들 중 [나고나]는 문학적 에고를 지닌 한 남성이 낯선 풍경 속에 던져져서 방황을 하는 가운데 겪는 초현실주의적 경험을 그리고 있다. 한 장에서 그는 한 원탁에 빙 둘러 앉아 있는 헤겔, 맑스, 니체, 프로이드, 다윈을 만나는데, 그는 그들이 토해 놓은 그들의 영혼에게 말을 건다. 그 뒤 그 에고는 신화적 동물 가젤을 만나게 되고 그 뒤를 따라간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와 마찬가지로, 그 에고는 가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초현실적인 힘을 지닌 네 노인의 도움을 받아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임무들을 풀어야만 한다. 그 가젤이 신비로운 여자 주인공 나고나의 화신인가. 소설은 ‘위대한 고백’이라는 댄스 페스티벌로 막을 내린다. 나고나는 태어나고, 에고는 그녀의 뒤를 좇아간다.
[미궁]은 한 노인의 신비스러운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 에고는 나고나로 구현된, 만물의 존재이유와 기원을 찾기 위해 여행을 계속한다. 노인은 핵 재앙으로 파괴된 세계로부터 등을 돌린다. 종교지도자, 과학자, 학자들은 차례로 미치고 죽어나간다. 한 곳에서는 오대륙을 상징하는 다섯 명의 여성이 스트립쇼를 하며 나타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거부한다. 그녀는 강간을 당하고 살해된다. 에고는 굶주림을 반대하는 알약을 만들고 있는 한 젊은 연구원에게 자연과 인간과 기술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노인과 이성적인 대화를 하려고 몇 차례 헛되이 노력한 끝에, 에고는 노인과 화해하고 그가 몸져 눕자 잘 돌봐준다. 나고나는 그런 그에게 사랑으로 보상을 해준다. 연인들은 동물들의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천국 같은 새 삶을 살기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사라졌던 노인이 등에 책을 잔뜩 진 채 산을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두 소설은 문학 평론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그것들은 리얼리즘, 마술적 리얼리즘, 초현실주의, SF 소설, 우화, 질문의 형식을 띤 전통적 신화이야기 등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케질라하비는 신비스러운 여성 주인공 나고나의 정체성에 관해 독자들을 교란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두 소설은 인간 사유의 역사에서 이정표로 남아 있는 것들을 풍자적으로 개괄하는 가운데 통찰을 추구하는 인간의 끝없는 탐구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케질라하비는 진정한 인식론적 통찰에 이르는 게, 그리하여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게 가능한지 어떤지 묻고자 했던 것이리라. 평론가들은 케질라하비의 이 두 소설을 가리켜 스와힐리어 소설사에서 처음 나온 포스트모던 소설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그의 장편소설 두 편이 불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는 1989년 이탈리아로부터 에도아르도 상귀네티 기념 시인상(Edoardo Sanguineti Memorial Prize for poet)을 수상했고, 1995년에는 스와힐리어로 쓴 그의 작품에 대해 샤반 로버츠 기념상(Shabaan Roberts Memorial Prize)이 수여되었다.
가나의 시인.
가나의 저명한 시인이며 학자, 교육자인 코피 아니도호(Kofi Anyidoho)에게 “시는 종이 위에 씌어지거나 인쇄되는 것으로 종료되는 텍스트 예술이 결코 아니며, 인쇄 기술의 광범한 영향력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는” 어떤 것이다. ‘풀드라마’처럼 “시의 생산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그의 주장은 저명한 극작가 에푸아 서덜랜드(Efua Sutherland)가 이끄는 가나 국립아동협회가 1984년 그를 초청하여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O.A.U(아프리카 단결기구)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O.A.U 기념관에서 열린 국기 게양 행사의 일환으로 아크라의 여러 학교에서 임의로 선발되어 온 아이들에게 문학적-연극적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지도해 줄 것을 부탁했을 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글로 씌어지는 아프리카 시들을 드라마적인 구술 전통으로 되돌리기 위한 퍼포먼스 양식을 생산하고 공연하기 시작했다.
아니도호는 현대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의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노예제는 살아있는 상처”라는 친구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이야말로 아프리카인의 삶을 향상시키는 키포인트이며, 자신의 시가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큰 자기지식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코피 아니도호는 1947년생으로 가족으로부터 에웨족의 구술시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가나에서 교육을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현재 가나대학 문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인으로서 그는 1978년 [혁명을 위한 비가](Elegy for the Revolution)를 시작으로, [우리들 꿈의 수확](A Harvest of Our Dreams, 1985; Heinemann paperback 1998), [땅의 아이](Earthchild (1985) Woeli Publishing), [조상의 논리와 캐리비안 블루스](Ancestral Logic and Caribbean Blues (1992) Africa World Press) 등의 시집을 펴내, 발코재단 문학상(Valco Fund Literary Award), 랭스통 휴즈상(the Langston Hughes Prize), BBC 예술 및 아프리카 시인상(the BBC Arts and Africa Poetry Award), 가나 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그는 [창살 너머의 세계와 망명의 파라독스](The Word Behind Bars and the Paradox of Exile,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97)를 펴냈다. 코피 아니도호는 아프리카 작가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 - 시』
- 혁명을 위한 엘레지 (Elegy for the Revolution, 1978)
- 우리들 꿈의 수확 (A Harvest of Our Dreams, 1985 - Heinemann(paperback), 1998)
- 땅의 아이 (Earthchild, Woeli Publishing, 1985)
- 조상의 논리와 캐리비안 블루스 (Ancestral Logic and Caribbean Blues, Africa World Press, 1992)
『이외의 작품 (Academic Writing)』
-창살 너머의 세계와 망명의 패러독스(The World Behind Bars and the Paradox of Exile,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97)
- 현대 가나 문학, 연극, 그리고 영화 (Fontomfrom. Contemporary Ghananian Literature, Theatre and Film, Editions Rodopi B.V., 2000)
Florent Raoul COUAO-ZOTTI
Barolong Lore SEBONI
Sandrine Bessora NAN NGUEMA
Barbara Ndimurukundo-Kururu
Francis Beng Nyamjoh
Veronica Nana Wilson-Tagoe
Emmanuel Dongala Boundzeki
Abdourahman Waberi
Ivor Agyeman-Duah
Tierno Monenembo
Thierno Mamadou DIALLO (본명)
Juan Tomas Avila Laurel
Amadou Kone
Fatou(Fatoumata) Keita
Shalini Chandan Jethanand Gidoomal
Wambui Mwangi
Yvonne Adhiambo Owuor
Halejoetse Hale Tsehlana
Ashur Bashir ETWEBI
Desire Philippe Ramakavelo
Mike Raphael Sambalikagwa Mvona / 필명 Mike Mvona
Teresa Maria Alfredo Manjate
Kavevangua Kahengua?
Margaret Anne Margie Orford
Akeem Lasisi (Akeem Lasunkanmi Lasisi)
Femi Osofisan (Babafemi Adeyemi Osofisan)
Mohammed Kabir Umar
Odia Ofeimun
Sehene Benjamin
Ken Bugul
B. Marie?tou Mbaye(본명)
Syl Cheney-Coker
Mohamed Dahir Afra
Mbali Ayanda Vilakazi
Meg(Margaret) Samuelson
Jacqui Thompson
Kangni?Alem lemdjrodo
Ines Bent Taher Abassi (Tunisian)
Lynda Gichanda Spe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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