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스크랩] 이 많은 문예지를 어찌할 것인가

우또라 2016. 1. 27. 14:46

  10년 이상 연륜을 쌓은 시전문 계간지 『시안』과 계간지 『시인세계』가 2013년 가을호에 정간 선언을 하였다. 복간이 될지 안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시안시회의 회장을 했었고, 『시안』의 편집위원을 여러 해 한 나로서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탁번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내가 독자 확보에 공헌한 바도 없고 나 자신도 시를 간혹 발표하긴 했었지만 정기구독자도 아니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드릴 수 없었다. 『시인세계』의 발행인 김종해 선생님께 2005년엔가 편지를 드린 적이 있다. 문학세계사에서 예전에 냈던 임홍재 시인 전집을 다른 출판사에서 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드렸더니 “오래 전에 절판된 시집을 다른 출판사에서 내주면 고마운 일”이라고 흔쾌히 허락해주시어 새미에서 요절시인전집 시리즈 제2권으로 낸 바 있다. 한국시인협회 관련 일을 하면서 김종해 선생님께서 사주신 밥도 여러 차례 얻어먹었는데 뭐 하나 도와드린 것이 없어 송구할 따름이다. 다행히 문학세계사에서 낸 공편저 『한국 대표시집 50권』이 그런대로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2006년도엔가 『문학나무』 계간평에 ‘이 많은 문예지를 어찌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다. 블로그에 다시 올린다.

 

 

이 많은 문예지를 어찌할 것인가

 

 

  2005년 겨울호로 통권 36호를 발간한 『생각과 느낌』은 문학과 문화를 아우름은 물론 문학 인접예술까지 다루어 읽을거리가 제법 많은, 꽤 수준 높은 종합 계간지였다. 같은 대구 지역의 계간지로 『시와 반시』가 있지만 이것은 시 전문 계간지이고, 『생각과 느낌』은 종합 계간지로서의 위상을 갖추고서 IMF라는 전대미문의 난관까지 잘 극복하면서 통권 36호를 냈지만 37호를 당분간은 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9년이라는 연륜을 쌓은 계간지가, 그것도 지방 거주 문학인과 문화인의 발언대 역할을 했던 계간지가 경영난을 못 견디고 정간하였으니(잠정적인 폐간이라 머지않아 속간될 것이라고 발행인은 말했지만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계간지를 내는 동안 발행인은 재정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었겠지만 배제와 선택의 기로에서 칭찬보다는 비난의 소리를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최근에 서울에서 나오는 어느 계간지의 발행인을 만났는데 그 동안 몇 억을 날렸다고 하면서 “그 사람 패가망신을 시키고 싶으면 문예지를 만들어보라고 권하면 된다”는 옛말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들어맞더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행위는 대부분 ‘상행위’와 연결되는데 문예지 발행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예지가 엄청나게 많이 발간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작년과 올해 상반기에 창간된 문예지 중에서 내가 2006년 봄호를 갖고 있는 것만 해도 6권이다. 쉬운 계산법으로 1권이 사라졌는데 6권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면이 넓어진 것이므로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까? 계간지끼리의 제살 갉아먹기, 작품의 질적 저하, 검증되지 않은 신인의 양산, 대동소이한 편집으로 인한 종이 낭비 등 문제가 없을지 심히 우려된다. 나는 6권 계간지를 소개하면서 각 계간지에서 눈에 띄는 시를 1편씩만 골라 소감을 말해보려 한다.

 

  2006년 봄호가 『서시』와 『창작 21』은 통권 제5호, 『문학들』과 『계간문예』는 제3호, 『시인시각』과 『계간 정인문학』은 창간호이다. 반년간지에서 계간지로 탈바꿈한 『서정시학』과 『시와 상상』 같은 것도 있으므로 이를 창간으로 생각하여 포함시킨다면 작년과 올해 창간된 문예지의 수는 10종이 넘을 것이다.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를 발행처로 한 『서시』는 편집주간이 문학평론가 김우종이다. 『서시』는 “윤동주 문학을 연구하고 윤동주의 뜻을 기리는 운동”을 하고자 만들어진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사무처가 용정시 지신진 명동촌이다)와 교류를 가지면서 실질적으로는 국내 문인들이 만든 것으로, 시ㆍ소설ㆍ수필ㆍ비평이 다 들어 있는 종합 계간지이다. 최근에 암으로 작고한 이영유 시인을 추모하는 특집이 눈길을 끈다. 시인이 생의 마지막에 했던 ‘잔치’였던 부평 시낭송회 행사 사진 3컷과 5편의 시, 그리고 이영유의 5편 시에 대한 나호열 시인의 평, 한소운의 행사 스케치가 모여 특집 난을 꾸미고 있다. 작고 직전에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환하게 웃고 있는 시인의 칼라 사진을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약값에 보태라고 소액을 보내드린 나에게 시인이 고맙다는 전화를 해와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풍성하고 화려했던 言語들은 먼 바다를

찾아가는 시냇물에 주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나뭇잎들에게는

못다 한 사랑을 이름으로 주고,

산기슭 훑는 바람이 사나워질 때쯤,

녹색을 꿈꾸는 나무들에게

소리의 아름다움과

소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거친 大地를 뚫고 새싹들이

온 누리에 푸르름의 이름으로 덮일 때쯤

한 곳에 숨죽이고 웅크려

나는 나를 묻는다

봄이 언 땅을 녹이며

올라온다

 

―「나는 나를 묻는다」 전문

 

  시인은 “풍성하고 화려했던 言語들”을 시냇물과 나뭇잎들에게 나눠준다. 나무들과도 대화가 된다. 조금씩 봄기운이 느껴지니 자신의 남은 목숨이 얼마나 아쉬웠을 것인가. 산천초목이 푸르러질 때면 자신의 몸이 대지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묻는다”는 말은 자신의 죽음과 장례식을 상상하며 해보는 것이다. 나는 싸늘히 식어 대지로 돌아가 있겠지만 봄기운은 언 땅을 녹이며 대지를 뚫고 올라오리라. 암세포가 퍼져 있는 몸…… 몸의 고통과 마음의 아픔을 참으며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점에 비장한 마음으로 쓴 시이다. 삼가 이영유 시인의 명복을 빈다.

 

 『서시』와 마찬가지로 종합 계간지인 『창작 21』은 발행인 겸 편집인이 문창길이다. 발표된 시를 통칭하여 ‘오늘의 통일시’라고 했고, 기획특집이 ‘DMZ의 새로운 의미와 시대적 상징성’ 및 김명수 시인의 군대를 소재로 한 시 23편을 묶은 것이므로 이 문예지의 편집 방향이 짐작된다. 문학의 힘으로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문창길 시인의 의지가 결집된 책이라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여러 시인의 작품 가운데 유자효 시인의 「닭」에 주목한다.

 

암탉이 사라졌다

한 여름에

알만 낳으면 냉큼 냉큼 집어다 먹었더니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며칠 뒤 헛간에 숨어 있는 암탉을 발견하였다

그 동안 낳은 몇 개의 알을 소중하게 품고 있었다

산란용으로 개량돼

인간에 의해 번식 능력을 잃었는데도

본능의 부름에 따라

이미 곤 알들을

굶어가며 숨어서 품고 있었다

 

―「닭」 전문

 

  조류독감으로 세계 방방곡곡에서 닭이며 오리 같은 가금을 한꺼번에 수백, 수천 마리씩 죽이고 있다. 생명을 얻어 이 세상에 나왔지만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병원균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데 대개의 경우 큰 구덩이를 파고 산 채로 묻는다. 유자효 시인은 실제 경험을 해보고서 이 시를 쓰지 않았을까. “본능의 부름”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어미는 모성본능이 있기에 제 새끼를 잘 돌보고자 한다. 그런데 알을 낳기만 하면 사람이 냉큼 가져가니 암탉이 화가 난 모양이다. 암탉은 알을 낳지만 산란용으로 개량된 암탉이므로 아무리 오래 품어본들 알이 부화하지는 않는다. 즉, 낳아본들 무정란인 것을 모르고 암탉은 낳은 알을 굶어가며 숨어서 품고 있다. 여름 더위에 이미 알들이 고아져 있는 것도 모르고 품고 있는 암탉을 보고 시인은 쯧쯧, 혀를 차고 있다. 아주 평이하게 진술되고 있지만 생명에 대한 외경과 측은지심이라는 주제는 충분히 곱씹어볼 만한 것이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 중에서 죄는 사람만이 짓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광주에는 시 전문 계간지 『시와 사람』이 있는데 종합 계간지 『문학들』이 나왔다. 주간 고재종에 편집인 나종영이고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문학인 15명이 편집고문ㆍ편집자문ㆍ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매호 책 볼륨이 400쪽 가까이 되므로 편집진의 수고가 보통이 아닐 것이다. 초창기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여 튼튼한 지방 계간지로 자리잡기를 기원한다. 유명한 시인의 이름이 여럿 보였지만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고영서의 시에 눈길이 오래 머문 이유는 우리네 농촌이 처한 현실을 가슴아파하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 때문이다.

 

거꾸로 본 세상 누우렇게 뜬다

요가원 바닥에 누웠다가 쟁기로 뻗는데

소를 몰고 가는 아버지 워낭소리 들린다

알알이 굵은 양파 밭을 갈아엎고

무 배추 마늘 다 갈아엎어도

넘실대는 황금들 차마 엎지 못했다

불을 뿜고 뱉어낸 연기 속에서

아버지 뻐끔뻐끔 다 타오른다

몇 장의 유서를 남기고 간 가을

성난 트랙터 귓가에 윙윙댄다

이렇게 우스꽝스런 체위로

내일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워낭소리가 상여를 끌고 솟구치는 하늘에

부러진 보습의 녹물이 흥건하다

 

―「오후를 쟁기질하다」 전문

 

  화자의 아버지는 소를 키우고 밭을 일구며 살아간 농부였다. 그 아버지가 알알이 굵은 양파밭을 갈아엎고 무 배추 마늘을 다 갈아엎은 이유는 뻔하다. 수확기에 그런 농작물이 똥값이 되었으므로 분해서 갈아엎고 만 것이다. “불을 뿜고 뱉어낸 연기 속에서/아버지 뻐끔뻐끔 다 타오른다”는 2행이 의미심장하다. “몇 장의 유서를 남기고 간 가을”에 아버지는 분신자살을 한 것일까? 시위 현장에서? 이런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성난 트랙터”이다. 아버지는 분노했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터뜨렸기에 워낭소리가 상여를 끌고 하늘로 솟구친다. 부러진 보습의 녹물이 흥건한 이유는 죽은 사람의 자식인 화자가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일 터. 왜 하필 요가원 바닥에 누웠다가 쟁기로 뻗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거꾸로 세상을 본다는 제1행에 그 답이 숨어 있을 것이다), 아무튼 화자는 우스꽝스런 몸짓을 하고는 “내일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다. 아주 싼 쌀과 아주 비싼 쌀 사이에서 우리 국민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땅을 일구고 땅을 지켰던 이가 땅을 버리는 세상이다. 땅을 일구고 땅을 지키면 망하게 되어 있는 세상이다. 양파와 마늘에 이어 이제 쌀까지 수입하게 되었으니 이 땅의 농민은 땅에서 무엇을 뿌려야 하나. 지난 10년 동안 자살한 농민의 수가 얼마인지 궁금하다. 밥 한 그릇도 경건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리.

 

 『계간문예』는 발행인 서정환, 편집인 백시종, 주간 채문수, 편집장 강병석이다. GS그룹이 협찬하는 문예지인지 제1회 GS에세이문학상 시상식 소식과 함께 제2회부터는 소설 부문이 추가되어 GS문학상으로 이름도 바뀐다고 사고를 내고 있다. 재벌기업이 문예지를 지원하는 좋은 사례를 만들고 있는 양사 관계자 여러분께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기업들이 홍보 비용의 1%만 지원해도 국내 문예지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다. 『계간문예』는 자체적으로 이종구수필문학상을 제정해 작년에 이미 제1회 시상식을 거행했으며 올해는 손소희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할 것이라고 한다. 문학상 제정이 빼어난 작가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고 고급독자의 저변 확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상문학상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문학상 수상이 시집․소설집의 판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유용선 시인의 「시집」이라는 시를 읽다가 씩 웃었다.

 

어미를 거두어 먹이는

새나 짐승이나 물고기가 있던가

 

새끼는 제 어미를

사랑하지 못하는 법이어서

 

나, 오늘도

내 어미 옆에서 시를 지었네

 

기도 드리러 예배당 가시는

저분의 기복신앙 앞에 나, 할 말 없네

 

―「시집」 앞 4연

 

  유용선은 시를 짓는 행위가 천하의 둘도 없는 불효자식의 불효막심한 행위임을 말하고 있다. 이런 식의 자조는 시 쓰기가 자본주의의 논리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시를 써본들 푼돈 벌이도 안 되니 이 짓(!)을 해서는 연로한 어미를 거두어 먹일 수 없다. 제 어미를 사랑한다면 당장 시작(詩作)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유 시인은 시 쓰기가 마냥 좋아서 불효 노릇인 줄 알면서도 또 시를 쓰는 것이다. 문예지 만들기도 마찬가지이다. 문예지는 서점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어떤 경우 종이 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넘기면서 서점에 며칠 둬두기만이라도 해달라고 사정을 해야 한다나.

 

어미를 거두어 먹이는 동물은

사람말고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

 

나, 어제도

내 어미 옆에서 시를 지었네

 

이보다 더 잔인한 짓을

세상에 시인말고 누가 한단 말인가

 

새끼는 제 어미를

사랑하지 못하는 법이어서

 

나, 이번에도

제 어미를 속여 시집을 묶네

 

―「시집」 뒤 5연

 

  사실, 시집이건 무엇이건 책을 내면 개인적으로 적자를 본다. 책 구입비, 발송비, 술값과 밥값이 만만치 않다. 첫 시집을 낼 때야 어미가 무얼 몰랐을 테니 좋은 일이라 생각했겠지만 또 시집을 낼 때는 시집 출간 사실을 숨겨야 한다. 슬픈 일이다. 마음으로는 효도를 하고 싶은데 실제적으로는 불효를 하게 되었으니. 김용택과 도종환 두 시인이 시집을 내면서 인세를 좋은 일에 쓰겠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솔직히 부럽다. 문학성과 상업성을 함께 갖추기란 정말 어려운데 두 시인은 이를 다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창간호로 나온 『시인시각』도 계간이다. 시집 전문 출판사였던 ‘문학의 전당’이 계간지 발행과 아울러 평론집까지 출간하기 시작했으니 전도가 양양하기를 빈다. 발행인 겸 편집인이 김충규, 편집주간이 배한봉이다. 기획특집의 제목이 ‘서정과 본질’이고 박현수 교수의 ‘전통시학’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했다. 문학기행의 첫 행선지를 경주로 잡았다. 전통을 지향하는 편집 방향이 젊은 시인과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다소간 염려스럽다. 박찬일의 시가 눈길을 끈다.

 

햇볕과 안개, 그리고 그 안을 운행하는 하얀 손이

붙잡아 올린 奇蹟,

매번 그 뜻에 이끌리러 바닷가에 온다

매번 그 뜻을 존중해서 수평선을 지켜본다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거북과 있고 싶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 녀석아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나를 잡아먹을 테다

하얀 손을 잡아먹을 테다

 

아니요, 아니요

하얀 손이시여, 내 願대로 마옵시고

당신 願대로 하옵소서

 

녀석아, 녀석아 머리를 내밀어라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전문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는 현전하는 최초의 집단 무요(舞謠)인 「구지가」를 한역한 것이다.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오긴 했지만 박찬일의 이 시는 신의 이야기이며 신에 반항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하얀 손은 신의 손일 테고, “거북과 있고 싶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 녀석”은 자살자일 것이다. (한국의 연간 자살자 통계를 보고 경악해 마지않았던 적이 있다.) ‘자살’은 창조주인 신에 대한 가장 큰 반항이다. 반항아는 신에게 외친다. 모습을 드러내 보이라고. 제3연은 이런 뜻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숨어 있는 신이여. 당신이 끝끝내 숨어 있겠다면 내 주검을 보여주겠소. 내 바다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써 당신을 잡아먹겠소.’ 신에 대한 반항 정도가 아니다. 처절한 반역이요 무서운 독신(瀆神)이다. 그런데 화자는 엑소시스트처럼 죽은 자의 몸에 들어가서 신을 성토하던 자세를 바꿔 제4연에 가서는 신에게 순명을 한다. 그렇다면 제5연은 무슨 뜻일까. 시인이 사자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사자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피조물인 인간이 아무리 날고 뛰어본들 신의 뜻을 거역할 수 없는 법임을 시인은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제4연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가진 뒤에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 기름 짜는 터인 겟세마네에 이르러 제자들을 뒤로 물리고 신께 올리는 기도 중에 하는 말이다. 사람의 의지와 신의 뜻이 어찌 늘 같을 수 있겠는가. 무수한 반항 가운데 신의 뜻을 이해해 가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일 터, 이 시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연으로 보면 될 것이다.

 

 『계간 정인문학』의 편집인 겸 발행인인 우원호 씨의 경력을 나는 모른다. 편집위원 송용호와 오태호도 『현대문학』의 문단인 주소록에 나오지 않는 분이다. 문학애호가인 우원호 씨가 사비를 털어 시 전문 계간지를 낸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의욕이 면면에 넘쳐난다. 창간호 특집이 ‘100명의 시인에게 묻다―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시는?’이다. 백석이 16표를 얻어 1위를 마크했고, 백석의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이 7표를 얻어 1위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흰 바람벽이 있어」가 각 4표를 얻어 공동 2위를 마크했다. 시인 2위는 10표를 얻은 김수영이고 시 4위는 3표를 얻은 이성복의 「남해금산」이다. 연재물은 세계인의 애송시, 노벨상을 수상한 시인들, 시 동인회 순례 세 가지이다. 『계간 정인문학』에 대한 불만이 두 가지 있다. 창간사에 왜 제호를 ‘정인문학’이라고 했는지 ‘정인’에 대한 설명이 안 나와 있다는 것이다. 한글로 써놓았고 ‘정인’에 대한 설명이 없어 情人이나 正人으로 이해하면 될지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모한 듯하지만 창간호에 신인상 공모 당선작이 발표되니 보기가 안 좋다. 제1회 ‘계간정인 시문학상’에 100여 명의 627편이 투고되었다고 하니 믿어야 하겠지만 대외적인 신뢰를 얻기가 어려울 테고, 신인상 발표 자체도 통권 2호로 미루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박제영의 3편 시가 다 좋은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상 깊게 읽은 시가 있다.

 

피고름 파낸 저 귀,

 

거죽뿐인,

뼈란 뼈 전부 녹고 삭은,

 

안팎의 모진 욕이란 욕

수십 년 묵혀 마침내 다 품은,

 

터엉텅

 

북이다. 네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막 깨어났는데, “바쁠 텐데 왜 왔니” 하신다. 자식 셋 데리고 모질고 독한 사막의 건기를 그보다 모질게 그보다 독하게 건너온 저 늙은 북이 내 어미다.

 

―「어머니의 만성중이염」 전문

 

  이 시는 내용과 형식이 다 흥미롭다. 자식 셋을 키우느라(아마도 아비 없이) 어미의 몸은 “늙은 북”이 되었다. 거죽뿐인, 터엉텅 빈 북이지만 얼마나 많은 고수의 두드림을 견뎌냈을 것인가. 몸이 한 고생이야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안팎의 모진 욕이란 욕”이 암시하고 있는 마음고생은 그보다 몇 갑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미는 그 모든 것을 수십 년 묵혀 마침내 다 품은, 터엉텅 빈 북이다. 또한 어미는 “모질고 독한 사막의 건기를 그보다 모질게 그보다 독하게 건너온” 분이다. 네 시간의 수술을 끝내고 마취에서 막 깨어나 자식의 얼굴을 보고는 “바쁠 텐데 왜 왔니”라는 말을 하자 화자는 기가 막힌다. 뼈란 뼈 다 녹고 삭아 거죽뿐인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는 데 5개의 연이 필요했는데 연에서 연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무척 신선하다. 이 시는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형식미학의 부분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상 새롭게 나온 계간지 6권에서 각 1편씩을 골라내어 소감을 써보았다. 여섯 계간지 모두 튼튼하게 성장하여 시인들에게 좋은 지면을 제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처 : 이승하 : 화가 뭉크와 함께 이후
글쓴이 : 이승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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