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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맨부커상 한강 “제 소설은요…” 한강 소설가 -kbs뉴스

우또라 2016. 5. 26. 12:16

맨부커상 한강 “제 소설은요…”

                               

      

맨부커상 한강 “제 소설은요…”
             

문득 떠오른 한강이라는 이름. 맨부커상 후보가 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기 전까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한 소설가에게 느닷없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습니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 어쩐지 현실감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관련 기사가 연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정말 상을 받는 건가? 괜한 기대감에 지레 또 호들갑 떠는 건 아닐까? 5월 16일 아침,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더군요.

명색이 출판 담당 기자입니다만 사실 방송뉴스는 책과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꼭 1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신경숙 표절 파문 같은 시끄러운 사건이 불거진다면 몰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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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서울 마포구 카페꼼마에서 열린 한강 작가의 기자간담회 모습5월 23일 서울 마포구 카페꼼마에서 열린 한강 작가의 기자간담회 모습


이런 와중에 터져 나온 맨부커상 수상 소식은 그간의 악재를 단숨에 뒤집을 만한 빅뉴스였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이런 팍팍한 시기에 말이지요.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문학적 성취를 넘어 많은 이에게 참 오랜만에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너도나도 서점으로 달려가 <채식주의자>를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9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 출간된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고요.

한강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을 겁니다. 수상 이후 처음 마련된 5월 24일 기자간담회 자리는 예상대로 인산인해였습니다. 마치 연예인 톱스타의 레드카펫 현장을 보는 것 같더군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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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학보 1995년 11월 20일 자에 실린 한강 인터뷰 기사고려대 학보 1995년 11월 20일 자에 실린 한강 인터뷰 기사


‘한강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을 이런 상황들 속에서 먼 옛날의 기억 한 자락을 불현듯 떠올렸습니다.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로 일하던 시절, 한강 인터뷰 기사를 실은 적이 있거든요. 다행히 지난 신문들이 모두 PDF 파일로 만들어져서 있어서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된 삶 속에 피어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여 한 면을 할애한 한강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지요. 벌써 20년 전에 쓴 내용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당시 스물여섯이던 작가는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갓 발표한 신인이었어요. 기사 앞부분에 작가의 이런 말을 인용해 놓았습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망가지고… 그러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 살아가 보려고 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망가지고 찢겼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 보려고 하는가.’ 그런 거요.” 그 아래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라 생각해요. ‘죽음을 잊지 말자’는 격언도 있듯이, 죽음을 잊고 살면 안 될 것 같아요. 제 경우엔 죽음이 잊히지 않는 편이죠.”

[바로가기]☞ 소설가 한강을 인터뷰한 ‘고대신문’ 기사 [PDF]

당시에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작가는 오히려 시류에 휩쓸리거나 쉽게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20년 동안 자기 문학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 온 것 같습니다. 당시 한강 작가를 인터뷰했던 기자가 기사의 마지막 단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젠 장편소설도 써보고 싶다는 그녀에게서 인터뷰 내내 느껴졌던 것은 겸손과 솔직한 마음이었다.”

23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 시간 가까이 한강 작가의 말을 귀담아들은 다른 기자들도 비슷한 얘기를 하더군요. 굉장히 겸손하고 가식이 없는 것 같다고요. 기름기가 배제된 소박함이랄까, 진솔함이랄까, 작고 낮은 목소리로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어떤 강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기자간담회는 문자 그대로 성대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힘주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충분히 전달됐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기자간담회 당일 쏟아진 수많은 기사가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작가의 말들을 저 역시 내내 곱씹었습니다.

한강 작가가 그 자리에서 독자들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기사를 만들어야 하는 기자의 입장에선 그 뜻을 충분히 헤아리면서도 기사에 다는 담을 수 없었던 그런 이야기들 말입니다. 단적으로 <채식주의자>에 관한 작가의 발언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11년 전에 쓰고, 9년 전에 책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간담회 자리에서 작가는 이 사실을 여러 번 상기시킵니다. “그 소설에서 이미 많이 걸어 나왔다”, “책을 쓴 지 오래돼서 그렇게 먼 곳에서 상을 준다는 게 당시엔 기쁘다기보다는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기사를 써야 하는 저 역시 이번에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주변에서도 그런 반응을 보인 분들이 꽤 있고요. 오래전부터 독자들의 그런 반응을 접한 작가 자신도 소설의 내용이 불편할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합니다.

다만, 고통을 고통스럽게 드러내는 방식이나 표현이 아니라 이 소설을 ‘질문’으로 읽어달라고 말하지요. 그러면서 <채식주의자> 이후에 발표한 소설에서 그 질문을 어떻게 다음 소설로 이어가며 새로운 질문들을 던져왔는지 꽤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좀 길지만, 작가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은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서 끝나는 소설인데요. 이 소설의 끝 장면, 앰뷸런스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항의하는,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끝나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질문을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다음에 쓴 장편소설인 <바람이 분다, 가라>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요. 그 소설의 끝에서는 불 속을 배로 기어서 빠져나오는 어떤 여자의 모습이 나와요. 그래서 그 장면을 쓰면서 뭔가 제가 살아야 한다는 대답을, 애쓰면서 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다음에 썼던 장편소설이 <희랍어 시간>이고요. 정말 우리가 살아내야 한다는 그 앞의 소설의 질문이 끝났던 자리 뒤에, 그렇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그게 가능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요. 그래서 인간의 어떤 연하고 섬세한 자리, 그런 자리를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다음 소설이 <소년이 온다>인데요. 그 소설에서는 압도적인 폭력의 상황에서 존엄을 지향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써가는 과정에서 저 자신의 질문들이 변화하는 걸 느꼈고요. 그리고 그 소설이 출간된 직후에는 아마도 인간의 어떤, 바라건대 밝고 존엄한 지점들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말씀드렸듯이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지 벌써 9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작가는 소설 세 편을 통해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천착해 온 겁니다. 그 결과, 이제 작가의 질문이 변했다는 점, ‘인간의 밝고 존엄한’ 지점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앞에 우리는 와 있습니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간담회 자리에서 굳이 길게 한 건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은 독자들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미 9년 전의 물음에서 꽤 멀리 와 있는 거지요.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지금, 그리고 앞으로입니다.

그래서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도 신작 소설 <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이 워낙 맨부커상 수상에 쏠리다 보니 정작 새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상 묻혀버린 거나 다름없게 돼버린 겁니다.

한강 작가의 신작 소설 ‘흰’한강 작가의 신작 소설 ‘흰’


작가가 3년여 만에 발표한 새 소설 <흰>은 아주 독특한 형식의 작품입니다. 책은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작가의 자기 고백이 짙게 밴 산문집에 가까운 것도 같습니다.

글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그렇게 ‘흰’ 것, ‘흰’ 것으로 보이는 것들로부터 끄집어낸 이야기 65편을 모았는데요. 이제 갓 출간됐으니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좀 기다려봐야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읽는 내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렵더군요.

저는 이 산문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산문을 ‘진혼곡’으로 읽었습니다. 그동안 작가가 소설 안에서 호명했던 주인공들과 죽음을 맞은 존재들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책에 작가의 말이 없어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작가가 한 말이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2014년 가을에 제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늦여름부터 겨울까지 레지던스로 머물렀었는데요. 1944년에 구십몇 퍼센트가 완전히 폭격으로 파괴됐다가 재건된 바르샤바라는 도시에 머물면서 그 도시를 닮은 어떤 사람을 상상했고, 그리고 그 사람이 어쩌면 제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로 잠시 이 세상에 잠깐 머물렀다가 떠난, 말하자면 저의 언니, 그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제가 삶의 어떤 부분을 주고 싶다면, 아니면 제가 그런 부분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흰 것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어떤 투명함, 생명, 빛, 밝음, 또는 눈부심 같은 것들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쓰게 되었어요. 이 책을 쓰고 나서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요, 이 소설은 산문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시 같기도 하고 조금 이상한 책이라서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려서 다듬었고요.”

“<흰>은 <소년이 온다>의 끝에서 제가 느꼈던 어린 소년 동호가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는 대목이 있는데요. 그 대목을 쓸 때 느꼈던, 아 우리에게는 더럽혀지지 않는 무엇이 있지 않나, 무엇으로도 훼손되지 않는 무엇이 우리 안에 분명하게, 힘 있게 존재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서 그런 지점, 인간의 어떤 투명한, 깨져도 다시 복원될 수밖에 없는, 그렇게 믿고 싶은,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지점을 책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고요. 그러니까 조금 더 내면적인 소설과 조금 더 어떤 사회적인 맥락을 가진 소설 두 편이 <소년이 온다> 다음에 하나는 나왔고 또 앞으로 나올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위의 인용문은 작가의 모두 발언에서 나온 얘기고, 그 아래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입니다. 앞으로 나올 거라는 다른 소설은 작가가 지난해 유일하게 발표한 단편소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을 확장해서 새롭게 쓰고 있는 장편소설이라고 합니다.

사실 지난 얘기입니다만 맨부커상 발표 직전에 한강 작가가 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방송하는 사람의 측면에서 보면 방송 시기를 참 절묘하게 잡았지요. 그 프로그램 녹화 때도 작가는 새로 나오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꽤 많이 공들여서 했다고 나중에 작가의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KBS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강 작가 KBS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강 작가


사실 맨부커상 수상에 대비해서 저희 KBS에 보관된 한강 작가의 영상이 있는지 샅샅이 찾아봤는데, 정말 단 한 건도 없더군요. 뉴스는 고사하고 프로듀서들이 만드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한강 작가를 만나거나 인터뷰한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방송은, 더구나 방송뉴스는 문학에 어둡습니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지 않았다면, 그 ‘자료 없음’의 상태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에서 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대중적, 상업적인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고요.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만 보면 <채식주의자>는 9년 동안 2만 부 정도가 팔렸다고 합니다. 1년에 2천여 명이 소설을 사서 읽었다는 계산이 나오죠. 작가도 말했지만, 이 숫자를 결코 작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한강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주는 고정 독자들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귀중한 독자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작가가 문학에 대한 작가적 견해를 피력한 대목이 있습니다. 한강의 소설을 읽는 이들뿐 아니라 문학이 막연하게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에게도 긴하게 참고가 될 만한 내용입니다.

“문학 작품을 보실 때 저는 어려운 소설, 어려운 시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걸 어떤 대답이나 제안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게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거지? 이렇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모든 소설의 장면들, 행동들, 인물들의 움직임들을 어떤 질문으로 생각하시면, 이 지문은 뭘까, 이 움직임은 뭘까, 이렇게 재미있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이신다면 이 세상에 어렵거나 지루한 문학 작품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뭔가 그렇게 조금은 마음을 여시고 한국 문학 작품을 읽어주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한강 작가의 이번 기자간담회는 사실 원래 1주일 뒤에 예정됐던 신작 소설 <흰>의 출간 간담회를 1주일 당겨서 진행한 겁니다. 당연히 귀국 후에 뭔가 공개적으로 발언해야 했던 작가의 입장에서는 한 번에 모든 얘기를 다 하고 싶었을 거고요. 작가는 이 간담회를 끝으로 언론과의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더는 하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진 것처럼 빨리 자신의 방에 숨어서 책을 쓰고 싶다는 게 작가의 솔직한 바람이었고요. 작가 자신도 예상 못 했던 큰 상을 받았고, 그로 인해 하루아침에 한국 문학의 미래를 두 어깨에 걸머진 유명 인사가 돼버렸으니 그 심적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래서 간담회 자리가 끝나면 어서 돌아가서 작업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출처 : 창작21
글쓴이 : 우또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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