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비'에게 드립니다 ]
저희는 지난 11월 23일,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린 동인문학상 시상식 반대 집회를 진행했던 작가들입니다. 당일 집회는 조선일보에 ‘친일문인기념사업’을 숙고하고, 대표적인 친일문인이었던 ‘동인문학상’ 폐지를 촉구하기 위해서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주최한 행사였습니다.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미당문학상 수상자이며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최정례 시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인문학상 폐지 집회’를 겨냥한 듯,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소설에 푹 빠져 밤을 새웠다. 왕사오보의 *혁명시대의 연애* 중 황금시대. 중국현대소설 읽은 게 거의 없지만 이런 씨니컬함이 중국인에게 있다는 게 경이롭다. 이런 말들 *아무리 내가 걸레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이 걸레라고 하면 걸레가 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내가 아무런 친일행위를 한 게 없지만 그들이 나를 친일시인이라고 하면 친일시인이 되는 것이다. 라는 말과 겹치면서 그들. 그 무리들. 프래카드를 들고 날뛰는 집단적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위선을 떠는 그들의 얼굴과 겹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이런 식의 연애소설은 시로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재미가 있고 서구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묵직한 힘이 있다. (11월 24일, 최정례씨 페이스북)
저희들은 이 글을 보고 매우 놀라웠습니다. ‘그 무리들, 프래카드를 들고 날뛰는, 집단적 정의,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위선을 떠는’이란 표현에 참으로 경악했습니다. 역사정의와 문학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찌해서 ‘그 무리들’이며, 더군다나 프래카드를 들고 날뛰다니요? 한국문단의 오랜 폐악이라고 할 수 있는 친일문인기념문학상을 폐지하고, 보수언론의 문단개입을 반대한다는 주장이 어찌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한 행위란 말입니까?
미당이 죽고, 2001년 미당문학상 제정 논란이 있었을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모든 지부에서 반대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민족예술인총연합을 비롯해서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친일친독재 행적을 가진 서정주 시인을 기념하는 문학상 제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2004년 현기영 이사장은 친일문인 43인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선배문인들의 과오에 대해서 사죄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최정례 시인의 페이스북 글대로라면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현기영 소설가도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위선자’였단 말입니까?
2015년, 해방 70주년을 맞이하여 박근혜는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임시정부 적통을 무시하는 ‘건국절’을 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였고, 일본군 조선인 성노예 문제를 국민과의 동의 없이 일본과 합의했습니다.
이에 몇몇 뜻 있는 작가들이 모였고,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를 중심으로 ‘친일문학상’ 반대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친일문학상 반대토론회, 친일시 전시회, 서대문형무소 광복절 행사, 미당상 시상식장 항의집회 등이 2년여 간 이어졌고, 많은 시민들이 동참했습니다. 광주 5월문학상은 미당상 수상자였던 김혜순 시인이 상을 사양했고, 서울시 문화본부에서는 공공기금 또는 공공행사에 친일문인문학상 관련 수상자와 심사자들을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2018년, 중앙일보에서는 미당문학상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상금을 후원했던 LG그룹에서도 더 이상 후원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18년 동안 문단 주류세력과 명망 있는 작가들이 앞장서서 한국문단 최고의 시문학상으로 자리 잡고 그 권위와 명예를 드높여 왔던 미당문학상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입니다.
저희는 ‘친일문인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 수상자들을 친일시인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끊임없는 국론분열과 국민들을 이간질시키는 여론책동으로 망국언론이라고 일컫는 조선일보에 항의한 것입니다. 친일도 우리 문학사에서 하나의 역사이며 우리가 연구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단죄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기념사업엔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특히 보수언론이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로 ‘친일문인문학상‘을 활용하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문학인들에겐 자성을 권고하면서,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를 향해 ‘친일문학상’을 폐지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최정례 시인은 ‘날뛰는 그 무리들’(반대자들)이라는 비하성 발언과 함께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위선을 떠는“ 것이라고 매도했습니다. 누가 자신의 이익을 취하며, 누가 위선자란 말입니까? 최정례 시인의 해명이 필요합니다. 악의적인 폄하라면 사과를 해야 됩니다. 저희는 날뛴 적도 없고 집단적 정의를 내세워 위선을 떤 적도 없습니다. 어떤 이익을 취한 바도 없습니다.
최정례 시인은 창비 시분과소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창비는 한국사회의 진보적 담론을 이끌어온 잡지입니다. 저희들 역시 창비의 독자들이고 창비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최정례 시인과 같은 ‘사고’를 가진 분이 창비 시분과위원으로 있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최정레 시인의 글에서 최소한의 자기 고민이나 곤혹스러움, 문학적 성찰이 담겨 있었다면 저희들도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거의 일베 수준의 비난에 가깝습니다. 이런 사람이 창비에서 주관하는 백석문학상 등 심사위원이었다는 게 의아한 일입니다. 한국문학과 지식인 사회에서 진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창비로서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창비 주간님, 대표님께 요청합니다.
1. 창비 시분과위원인 최정례 시인의 사퇴를 요구합니다.
2. 최정례 시인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의 요청을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들의 의견에 대한 창비 편집주간님과 대표님의 답변을 꼭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조선일보 친일문인기념 동인문학상 폐지 촉구 집회 참석자 일동
집회주관 및 참여단체ㅡ
민족문제연구소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민족예술인총연합 인천지부 / 역사정의실천연대 /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한 학생시민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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