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게시판

창작21-파주 DMZ 생명문학축전 열려

우또라 2006. 10. 10. 10:38
시인들, 철조망 걷기 위해 소매 걷어부쳤다
30일, 파주 임진강역 'DMZ 생명문학축전' 열려
텍스트만보기   이종찬(lsr) 기자   
▲ 파주 DMZ 생명문학축전 팸플릿
ⓒ 창작21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高句麗) 같은 정신도 신라(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休息)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어야 하는가. 아무런 죄(罪)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박봉우, '휴전선'


한반도가 남북으로 쪼개진 지 61년. 사람의 나이로 치면 회갑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회갑이라면 60갑자가 새롭게 시작되는 때가 아닌가. 하지만 한반도에는 예나 지금이나 바늘처럼 뾰족한 철조망이 그대로 둘러쳐져 있다. 대체 동족의 가슴을 찌르는 한반도의 철조망은 언제쯤 걷힐까. 언제쯤이면 쇠사슬 같은 철조망을 훌훌 벗어던지고 서로 얼싸안으며 춤을 출 그날이 올 것인가.

경기도 파주 임진강역 옆에 세워져 있는 시인 박봉우(朴鳳宇, 1934~1990)의 시비에는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있지만, 그 산자락에는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하고 있다고 새겨져 있다. 하지만 시인 박봉우는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이기 때문에.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시인 이기형(89) 선생은 ‘파주 DMZ 생명문학축전’ 초청의 글에서 "오늘 우리 현실은 분단에 겹쳐 우환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기형 시인은 "작통권은 기어이 환수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구배들은 반대하고 있다"며, 이는 "배족행위이자 분단 61년에도 정신을 못 차린 망국적 노예근성의 발로"라고 꼬집는다.

이어 이시인은 "만일 작통권을 환수 받지 못하면 북미 관계가 최고로 악화되었을 때, 미일 군사동맹 때문에 일본군은 자동적으로 한국에 다시 침입하게 되어 있다"고 한탄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이 평화헌법을 팽개치고 남북을 재침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이는 결국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우리 민족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것.

▲ 자유의 다리 끝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짤막한 쪽지들
ⓒ 이종찬
"파주시는 분단 경계지역의 첩경으로서 현재도 판문점을 비롯한 자유의 다리, 도라산역, 장단역 등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산 증거들이 산재해 있는 곳입니다. 또한 자운서원 등 전통 문화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역에서 우리는 평화를 지키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함께 나누기 위해 생명문학축전을 열고자 합니다." - ‘DMZ 생명문학축전’ 인사말 몇 토막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6자회담 무조건 복귀를 강제하기 위해 금융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남북 분단의 발 빠른 해소와 한반도 평화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문학예술인 50여 명과 휴전선 가까이 사는 지역민들이 경기도 파주 DMZ지역에 모여 'DMZ, 평화마을을 찾아가는 생명문학축전'을 연다.

오는 30일(토) 오후 2시30부터 오후 5시까지 2시간 30분 동안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역 박봉우 시비 앞마당에서 펼쳐지는 '제2회 파주 DMZ 생명문학축전'은 '창작21작가회'(고문 민 영 이기형, 대표 문창길)가 주최하고, '창작21' 동인과 '들꽃문화예술창작연구회'가 주관한다. 후원은 국무총리복권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번 행사의 1차 모임 장소는 30일 오전 9시 충무로전철역 1번 출구 대한극장 앞이며, 2차 모임장소는 같은 날 오전 10시 고양시 원당전철역 앞 공영주차장 신호등 앞이다. 이어 오전 11시에 파주 통일전망대 도착해 임진강 너머에 있는 북한지역을 살펴본 뒤 오후 1시30분에 임진강역 옆 박봉우시비에 도착, 육필로 통일시 및 기원문을 쓰는 것으로 본행사의 발걸음을 뗀다.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강영은 시인의 사회로 열리는 본행사의 1부는 이기형(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시인의 "우리 작가들은 힘찬 필봉을 휘둘러 명 내용 명 문장으로 조국의 분단 해소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엮어내야 한다"라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각 문학단체 대표 축사, 송용구(고려대 연구교수) 시인의 '생명공동체로 나아가는 상생의 문학'이란 강연이 이어진다.

▲ 동족의 가슴을 찌르는 저 철조망은 언제쯤 걷힐 것인가
ⓒ 이종찬
제2부는 분단해소와 통일을 기원하는 시인들의 시낭송, 북녘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남녘 어린이들의 동시 낭독, 성악공연 등이 잇따라 펼쳐진다. 시낭송 첫 마당은 시인 이무원, 이인평, 서안나, 김년균, 이봉교. 둘째마당은 고양, 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 박남희, 이화국, 최미여, 최봉희, 강란숙. 셋째마당은 시인 신규호, 임술랑, 박철, 정세훈, 서종남. 넷째마당은 시인 이기형, 김효경, 송용구, 조길성, 강영은.

이어 수원 대연유치원생 한다혜 어린이가 '북녘 어린이에게 보내는 동시'를, 파주시 금릉초교 1년 장미소 어린이가 '남녘 어린이가 읽는 북녘동시'를 임진강 너머 북녘 땅을 바라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읽는다. 끝으로 김재홍(성결대) 교수의 성악공연과 함께 이번 행사에 참가한 문학예술인 모두가 참여하는 통일시 및 기원문 읽기, 자유의 다리 건너기 등으로 이번 문학축전이 마무리된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창작21> 대표 문창길 시인은 "파주 DMZ지역은 철책을 따라 경계지역에서 거주하고 계신 실향민을 비롯, 주민들은 이미 오랜 세월 몸과 마음에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와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담고 살아왔다"며 "우리는 분단의 현실을 고민하는 진정한 한민족의 시인, 작가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담당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적 표현을 이곳에 또렷하게 새겨놓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