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진(울산대 철학과 교수)
송선생의 글은 기독교인도 아니고 불교인도 아닌 타자적 관점에서 객관성을 담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한문학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17년간 울산에서 논란이 되어 왔던 처용문화제의 정체성 시비가 최근에 울산 기독교계 인사들의 개입으로 종교 갈등 양상으로 비약됨으로써 중앙 언론에서도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송선생뿐만 아니라 손석희의 시선집중, 그리고 한 불교계 인사의 기독교 비판 기사 역시 울산에서의 처용 논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배려 없이 ‘처용 대 기독교’의 대결 구도만으로 몰아감으로써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반문화적이라는 그릇된 메시지를 일반에게 심어줄 우려가 크다. 울산에서의 처용 논란을 이명박 대통령과 연관시키거나 불교계의 종교 편향 주장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지나친 비약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우선 처용문화제는 송선생이 알고 있는 것처럼 42년 전통의 축제가 아니다. 1962년은 공업도시로의 새로운 도약을 세계만방에 알린 울산의 시대정신을 가름하는 분수령이고, 이를 영구히 기념하기 위하여 울산시민들은 ‘울산공업축제’를 대표축제로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1991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당시 문화부장관(문학 전공)을 내세운 일단의 문학교수들이 25년 전통의 울산공업축제를 폐지하고, 울산시 남구 문화원에서 지내던 ‘처용제의’(處容祭儀)를 ‘처용문화제’로 승격 출범시켰다. 시민적 동의나 이해를 충분히 구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 후 지난 17년 동안 처용문화제는 울산시의 대표축제로 행세해 왔지만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그 하나는 처용문화제의 명칭 자체가 외설적인 설화에 근거하고 있어서 아이들까지 참여하는 대표축제로서 부적합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처용문화제가 문화축제를 지향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축제 내용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처용이 뒷전으로 밀리고 월드 뮤직 페스티벌 중심으로 치러지는 것조차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7년 동안 울산 지역신문에서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은 처용문화제가 울산의 대표축제로서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부실하다고 비판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처용설화의 정신이 세인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관용’과 ‘화합’보다는 ‘불륜’과 ‘야합’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처용부인과 역신의 통간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처용의 태도에서 그의 부인을 범한 사람이 왕이나 권력실세였다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골품제를 근간으로 하는 신라왕실에는 색공(色供)으로 불리는 여성들이 있었으며, 헌강왕이 처용에게 내린 미인도 그 일원이었을 것이다. 또한 최근 처용설화의 역사학적 연구에서는 처용이 자신의 부인을 이용하여 권력실세와 야합하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처용사건의 신격화 역시 신라 말기 박씨왕가의 정권 창출과 관련이 있다는 논문까지 나왔다. 따라서 처용정신이 관용이라는 것은 이제 낡은 이론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울산의 정신문화를 걱정하는 뜻있는 인사들이 울산문화연대를 설립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처용문화제 논란을 종식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울산 지역의 문화인들은 처용문화제가 시민 대표축제의 형태보다는 전문적인 문화축제로 특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피력해왔다. 그런데 처용을 ‘신령스러운 존재’로 믿고 있는 모 인사는 일단의 문학교수들을 처용 이데올로그로 내세워 처용문화제의 위상을 고수하려고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특정 문중세력까지 끌어들여 폭력적인 사태를 유발하는 불미스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송선생이 한문학자이므로 객관적이지 않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문학적 가치만으로 대표축제를 특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송선생은 처용문화제를 종교행사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런 측면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처용 전승이 무속신앙의 형태로 전개되어 온 것은 반박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연스님조차도 처용 사건을 벽사진경(僻邪進慶)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처용가는 정형화된 무가(巫歌)로 알려져 있다. 처용무 등이 궁중나례에 활용된 것도 악귀를 물리치려는 종교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으며, 처용은 지금도 종교제의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학계의 주류적 해석은 처용을 무당(巫堂)으로 보고 있으며,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무당으로 규정되어 있다. 중요한 무가마다 처용신이 오르내리고 있으며, 지금도 울산지역의 구석구석에는 처용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17년 동안 처용문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처용제의’(處容祭儀)에서 울산시장은 초헌관(初獻官), 처용추진위원장은 아헌관(亞獻官)으로 제례(祭禮)를 주관해 왔다. 금년부터 그 처용제의에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기독교계의 반발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비록 ‘처용제의’를 ‘처용고유’(處容告由)로 바꾸었지만, 처용문화제의 종교적 함의는 이처럼 명백하다. 처용문화제의 시작을 누구에게 알리는가? 천지신명에게 알린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처용신에게 알리는 것이다.
울산의 기독교계만이 대표축제의 개편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기독교계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최근 처용정신을 신격화하여 울산의 대표적인 정신문화로 정립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다. 송선생이 비판한 것처럼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단군상을 훼손하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법정에서 이미 시비가 가려진 사항이다. 특정 종교단체가 학교 등 공공기관에 단군상을 대대적으로 설치하려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울산시민의 공공세비로 운영하는 대표축제가 특정 종교의 색채를 띠고 있는 한 분란은 필연적이다.
울산에는 처용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전통가치들이 많다.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있고, 쇠부리와 고래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으며, 울산은 만고충절의 표상 박제상과 독립운동가 박상진의 고장이기도 하다. 또한 울산은 정주영과 구본모가 대기업을 일구었던 경제신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밝고 건전한 가치들이야말로 울산을 대표할 수 있는 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처용 관련 행사들을 전문적인 문화예술 축제로 특성화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