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눈물로 살거냐/ 긴긴 세월을 허탕 치고도 못 말려/ 달구벌 멋은 잦아들고/ 만경벌 흥은 사위어가고/ 퍼지는 영어 열풍 어디로 가나/ 불야성 저 광란하는 나체춤의 의미는 뭐냐/ 나운규는 아리랑고개를 울고 넘었건만/ 분단고개를 울고 넘는 사람은 없다/ 국록 먹는 어른들은 말잔치로 밤을 지새우고/ 청바지들은 할아버지가 울고 넘은 박달재를/ 촐랑대며 넘는다/ 가쓰라.태프트와 을사오적의 후예들은/ 맥아더 동상을 사수하며 분단선에 쇠말뚝을 박는다/ 망국의 치욕 을사늑약 백 년에도 정신을 못 차려/ 고구려 넋은 어디로 갔나/ 백두산 신단수 큰할아버님이 내려다보신다/ 선열들의 피맺힌 목소리가 들린다/ 슬픈 사연 하도 많아 누선도 말랐느니/ 피 마르는 지겨움 가슴이 빠개진다/ 임 따라 어라연엘 가랴/ 임 맞으러 삼지연엘 가랴/ 지는 해야 빨리 져다오/ 솟는 해야 퍼뜩 솟아주렴/ 폭풍우 천 길 만파를 뚫고/ 바다제비 날아온다
- 시집『해연이 날아온다』(실천문학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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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의 최고령 현역시인은 황금찬 시인이다.
그런데 2년 전 오늘까지만 해도 황금찬 시인보다 한 살 위의 시인이 따로 계셨다.
2013년 6월12일은 이기형 시인이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날이었다.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7년 ‘민주조선’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정신적 지도자로 모셔온 몽양 여운형 선생이 서거함에 따라 33년간 일체의 공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 생활에 드셨다.
그러다가 1980년에야 신경림 시인, 백낙청 문학평론가 등을 만나 분단 조국 하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던 생각을 바꿔 시작 활동을 재개했다.
작고 전까지 10권의 시집을 낸 선생은 재야 민주화통일운동에 참여하면서 분단과 통일 문제를 다룬 시를 꾸준히 발표했다.
이기형 시의 주제는 고스란히 민족의 안타까운 현실을 담은 통일에의 열망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민족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가슴 안에서 식지 않았다.
북한에 어머니와 처자식을 남겨둔 채 월남한 고인은 2003년과 2005년 평양을 방문, 딸을 만났지만 어머니와 아내를 다시 보지 못한 그리움을 시에 담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시를 포함한 시집 속의 시들은 경색된 남북관계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날선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2009년에 자주 민족통일을 훼방 놓는 모든 걸림돌을 단숨에 깨뜨리는 쇠망치 같은 <절정의 노래>를 펴냈다.
선생의 10번째이자 마지막 시집이었다.
선생은 ‘전번 것들보다 진전이 없다면 새 시집을 낼 필요가 없다’는 소신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그리고 요즘 젊은 시인들이 통일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젊은 시인들은 내 시를 보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요즘 시인들이 문학적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역사,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고통의 분단시대를 살아온 시인이 시들지 않는 불꽃의 삶으로 염원해온 통일이 바다제비처럼 날아올 날은 언제일지, 해연이 오긴 오겠는지….
- 시집『해연이 날아온다』(실천문학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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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의 최고령 현역시인은 황금찬 시인이다.
그런데 2년 전 오늘까지만 해도 황금찬 시인보다 한 살 위의 시인이 따로 계셨다.
2013년 6월12일은 이기형 시인이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날이었다.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7년 ‘민주조선’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정신적 지도자로 모셔온 몽양 여운형 선생이 서거함에 따라 33년간 일체의 공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 생활에 드셨다.
그러다가 1980년에야 신경림 시인, 백낙청 문학평론가 등을 만나 분단 조국 하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던 생각을 바꿔 시작 활동을 재개했다.
작고 전까지 10권의 시집을 낸 선생은 재야 민주화통일운동에 참여하면서 분단과 통일 문제를 다룬 시를 꾸준히 발표했다.
이기형 시의 주제는 고스란히 민족의 안타까운 현실을 담은 통일에의 열망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민족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가슴 안에서 식지 않았다.
북한에 어머니와 처자식을 남겨둔 채 월남한 고인은 2003년과 2005년 평양을 방문, 딸을 만났지만 어머니와 아내를 다시 보지 못한 그리움을 시에 담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시를 포함한 시집 속의 시들은 경색된 남북관계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날선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2009년에 자주 민족통일을 훼방 놓는 모든 걸림돌을 단숨에 깨뜨리는 쇠망치 같은 <절정의 노래>를 펴냈다.
선생의 10번째이자 마지막 시집이었다.
선생은 ‘전번 것들보다 진전이 없다면 새 시집을 낼 필요가 없다’는 소신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그리고 요즘 젊은 시인들이 통일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젊은 시인들은 내 시를 보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요즘 시인들이 문학적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역사,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고통의 분단시대를 살아온 시인이 시들지 않는 불꽃의 삶으로 염원해온 통일이 바다제비처럼 날아올 날은 언제일지, 해연이 오긴 오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