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통일시인' 이기형 1주기 추모 모임 및 '이기형 대표시 선집'출판기념회가 12일 오후 서울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아흔일곱 생애를 단 하룻날처럼 휘달려간 '통일시인' 이기형 1주기를 맞아 추모 모임과 '이기형 대표시 선집' 출판기념회가 12일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함께 열렸다. 천명(天命)의 세월, 온 몸으로 조국의 참된 해방과 통일을 노래한 '백발 청춘의 시인'은 그가 한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소년같은 순수한 영혼과 온유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다시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시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던 한국작가회의, 한국문학평화포럼 등 문학동네 인사들과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사월혁명회, 양심수후원회,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통일운동 단체를 포함해 200 여 명의 참가자들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추모 및 기념회에 끝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 | | ▲ 왼쪽부터 민영 시인,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어린시절을 만주에서 보냈던 민영 시인은 추도사에서 고 김규동 시인과 함께 이기형 시인을 기억하면서 "50년 가까이 형, 동생으로 지내오던 두 분이 차례로 가시고 나니 앞으로 북쪽을 바라보면서 형님이라고 떠올릴 수 있는 시인이 없어졌다"며, 그리움을 표시했다. 민영 시인은 "함경도 출신인 두 분은 생전에 만나시면 '이 담에 고향갈 때 같이 가자'고 곧잘 이야기했다"며, "부디 저 세상에서도 생각나면 글쓰시고 후배들 생각해 달라"고 추모했다. 이미 그 자신이 여든에 달한 노시인은 "선생님들 고맙습니다"라며 추도사를 맺었다.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해방과 분단의 세월을 이러저리 헤매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쉼없는 통일염원으로 걷고 또 걸었던 시인의 등산화"를 떠올리며 "이기형 시인의 한 생은 남(南, 他)의 하늘 아래서 사느라 너무 고통스러우셨다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 | ▲ 왼쪽부터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강준식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이형찬 바른정치실현연대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처음엔 시인 이기형으로 뵌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열정으로 훼손되는 민주주의, 짓밟히는 민중생존권, 탄압받는 민족통일의 현장에 달려오신 선생니을 만났다"며 고인과의 만남을 기억했다. 권오헌 회장은 "2~3년 전부터 이기형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통일시상이 무수히 떠올라. 100살까지 계속 쓸거야'라고 했다며, "장담하시던 백수를 못보고 잠드셨다. 고향엔 다녀오셨느냐"고 애도했다.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자신이 지난 1989년 '아침'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이기형 시인과 만나 지리산 빨치산을 다룬 실록연작시집 '지리산'을 출판했다가 함께 구속된 '공범'관계라는 인연을 소개했다. 정동익 의장은 "이기형 선생님은 사월혁명회와 동아투위 행사에 항상 정시에 참석해서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시낭송을 해주셨다"며, "이제 70대에 접어든 동료들에게도 노년의 이기형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그 열정을 보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정 의장은 "선생님은 '통일이 되면 북에 남겨둔 영석(아들), 호정(딸)을 꼭 만나달라'고 당부했다"며, "그토록 후배들에게 모범이고 귀감이 됐던 일생을 꼭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비서역을 맡아 한 이기형 시인이 지난 1989년 몽영 여운형 연구자였던 자신을 찾아와 첫 인연을 맺게 됐다는 강준식 몽양여운영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첫 만남에서부터 단박에 '민주화 이후 민족적 과제는 통일'이라는 시인과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강준식 총장은 이기형 시인이 좋아한 시인 마오쩌둥을 자신이 소개했다는 일화를 전하면서 "이기형 시인은 참으로 소년같은 순수한 모습이 있었으며, 시는 과감하고 파격적이었지만 성품은 온유하고 따뜻했다"고 감회롭게 회고했다. 여든살에 접어든 이형찬 바른정치실현연대 대표도 고향 선배인 이기형 시인의 맑고 깨끗한 성품을 기리며 "평생 아름다운 생활을 하시다가 아름다운 날을 택해 돌아가셨다"고 추모했다. | | | ▲ 왼쪽부터 '이기형 대표시 선집'의 대표 엮은이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맹문재 시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출간 기념사에서 "이기형 시인은 노년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행사에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빠짐없이 열심히 다녔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현장에서 시낭송을 하셨다"며, "이런 시인, 이런 통일운동가는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도록 기려서 후세에 감동과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표 엮은이인 맹문재 시인은 이번 시선집이 지난해 가을부터 기획돼 시인이 남긴 10권, 600편의 발표시와 미발표 신작시 중에서 통일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낸 시편을 중심으로 선정위원들이 100편을 뽑았으며, 이중 5편은 유족들이 고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맹문재 시인은 이 시선집을 통해 이기형 시인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통일의 노래를 가장 잘 부른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 | | ▲ 왼쪽부터 나종영, 정우영, 권옥희, 김창규 시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 | | ▲ 왼쪽부터 문창일, 박용희, 홍일선, 고규태 시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날 나종영, 정우영, 권옥희, 김창규, 문창일, 박영희 시인이 시선집에 포함된 이기형 시인의 대표 시를 낭독하고 홍일선, 고규태 시인은 1주기 추모시를 발표했다.[별도 박스 : 고규태 시인-머나먼 통일공화국의 노래] 더불어 명상음악가인 평산 신기용, 중요무형문화제 제30호 가곡 이수자인 이정희, 장순향 한양대 무용과 교수와 학생들, 가수 인디언 수니, 대금 연주자인 김용욱 여민락 대표, 마묵무용단, 가수 김현성 등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기형 시인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공연에 나섰다. 추모 및 기념회는 이기형 시인의 외아들인 이휘건 한양대 교수와 며느리, 두 손녀의 감사 인사로 끝을 맺었다. 이휘건 교수는 "지난해 6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방현주 여사)은 아버님이 그리우셨는지 9개월만 더 사시고 올해 3월에 돌아가셨다"고 가족의 근황을 소개하고 "오늘 행사전에 열 여섯분이 버스를 타고 묘소에 따로 인사를 드리고 왔는데,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함께 해 준 여러분들은 아버님을 정말 깊게 그리워하시는 분들인 것 같다. 가슴에서 절절 끓어 오르는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 | | ▲ 『이기형 대표시 선집』임헌영ㆍ맹문재 엮음/작가/344쪽 [사진-작가 제공] |
머나먼 통일공화국의 노래 -이기형 선생님 1주기에 고 규 태
2005년 7월 25일, 여기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 89세의 한 노인이 서 있다
여름꽃 흔들리는 순안비행장 한켠 저만큼엔 아슴히 옅은 무지개가 떠 있고 남녘에서 온 상노인이 서 있다 흰 머리, 흰 눈썹, 꼿꼿한 허리, 형형한 눈빛의 당신은 문인방북단의 일원- 최고령의 시인 이기형 선생님 당신 눈은 먼 곳에 가 있다 저 너머 동쪽 함경도 거기 저 너머 동쪽 묘향산맥 지나 거기 내 고향은 어디쯤일까 돌아보며 돌아보며 떠나온 흥남부두 그 안쪽 함경남도 함주 땅은 어디쯤일까 내 고향은 도무지 어디쯤일까 눈가엔 남 모르는 눈물 눈시울에 물컹 젖어드는 옛기억 최고령의 당신은 어느새 소년이 되고 당신의 숨은 거칠어졌다 무심한 남행의 비행기는 탑승을 재촉하고, 남녘북녘 문인들은 웅성웅성 아쉬움을 나누고, 재회를 기약하고 그 틈박에서 또 한 번의 이별에 당신은 산산이 무너졌다 그 찰라, 당신 손을 이끄는 건 웃음 많은 북녘의 안내자 불현듯 당신 앞엔 따님이 나타나고 딸은 벌써 59세, 내년이면 60 어느새 희끗 할미꽃의 초입이었다 아, 얼마만인가? 10년 20년만인가, 30년만인가, 40년만인가 이도 저도 아니었다, 반백년도 넘는 55년만이었다 둘은 껴안고, 울고, 흐느끼고, 깡마른 가슴 맞대어 얼굴을 부비고 하지만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당신께 날아든 것은 어머니 소식 어머니는 함경도에 안 계셨다 어머니는 공화국에 안 계셨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셨다 부모님은 이미 저 세상에 계시었다 거꾸로 흐르는 역사 속 분단, 전쟁, 생이별, 그리움, 피눈물 속절없이 흘러버린 세월 분단과 전쟁- 그러나 당신이여 얼마나 다행인가 따님 얼굴 한 번은 보았으니 그러나 당신이여 얼마나 불행인가 부모님 얼굴은 한 번도 뵙질 못했으니 그렇게 선생님은 가시었다 무려 97세, 아흔 일곱의 당신은 늙을 줄 모르는 소원 하나 풀지 못하고 당신마저 이 산하의 흙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 우리들의 남녘 이름하여 대, 한, 민, 국 북녘은 멀다 만남은 멀다 대화는 멀다 평화는 멀다 상생과 통일은 더 멀다 한 생애가 온통 통일의 여정이었던 이기형 선생님이여 독립은 멀다 해방은 멀다 몽양은 멀다 건준은 멀다 하나의 조국은 더 멀다 한 생애가 전부 조국해방과 통일공화국 건설의 손길 발길이었던 당신이여 언론은 멀다 신문은 멀다 두 눈은 멀다 두 귀는 멀다 사실은 멀다 진실은 멀다 부러진 펜- 정론직필은 더 멀다 한 생애가 온통 반듯 반듯한 기자였던 당신이여 온몸이 온통 언론이었던 당신이여 자유는 멀다 평등은 멀다 인권은 멀다 민중은 멀다 약자는 멀다, 멀쩡한 헌법 놔두고 민주주의는 더 멀다 다카키 마사오- 친일 친미 유신은 더 가깝다 한 삶이 전부 민주주의 실현의 전선이었던 님이여 한 삶이 오직 반외세 자주 실현의 최전선이었던 님이여 목숨은 멀다 생명은 멀다 사람은 멀다 생환은 멀다 웃음은 멀다 실종은 가깝다 죽음은 더 가깝다 한 삶을 온통 저기 저 세월호에 갇힌 채 살아온 이기형 선생님이여 그리고 다시 여기, 우리들의 몸서리치는 남녘 이름하여 대-한-민-국 시는 멀다 문학은 멀다 글은 멀다 정신은 멀다 행동 참여 실천은 더 멀다 잡념 잡담 잡소리는 가깝다 한 삶이 오로지 치열한 문학이었던 님이여, 행동의 자취마다 실천의 굽이마다 민족의 대서사시였던 당신이여 떨리는 손을 붙들어 치세워 핏자국처럼 또박또박 써내려가신 선생님의 장대한 문학 당신의 시여 노래여 이 시대의 살아있는 예술이여 참된 먹물의 육성이여 그러한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저 남북 휴전선 위 저 서로를 겨눈 총부리 위 저 중무장한 대량살상의 무기 위 저 남북을 유유히 오가는 새의 날개짓 위 당신은 거기 계신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잘들 살고 있는지 샅샅이 살피고 계신다 그러면서 이기형 선생님 흰 눈썹 휘날리며 노래하신다 살아서 못다 부른 겨레의 노래, 인민의 노래, 민주주의의 노래, 사람 사는 세상의 노래, 우리 가슴을 저미는 노래 남과 북에 울려퍼진다 남과 북에 스민다 동서남북을 적신다 오늘도 당신이 부르시는 아직은 우리에게 머나먼 노래- 아, 통일공화국의 노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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